총회가 정한 장애인주일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 장애인주일이 제정된 2013년 이후 장애인주일을 지키는 참여율을 보면 그 실태가 가늠된다.

전국의 대부분 교회가 장애인주일 시행에 매우 미온적이다. 장애인주일이 언제인지 모르는 목회자와 성도도 태반이다. 참여율이 이렇게 저조해 제도 자체가 유명무실해졌다. 장애인을 위한다는 취지 자체가 무색할 정도다.

그동안의 장애인주일을 돌이켜보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장애인주일 시행에 따른 공문과 포스터, 설교문 등 ‘장애인주일 안내서’는 처음부터 없었다. 장애인주일을 담당하는 부서도 명확하지 않다. 교단의 목회 일정이나 행사계획, 교단 달력에서 조차 장애인주일이 사라졌다. 다른 기념 주일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장애인주일이 만들어진 뒤 과연 시행 의지가 얼마나 있었는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장애인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높이기 위한 장애인주일은 한낱 허울뿐이다.

물론 장애인주일을 지키는 것이 장애인 사역의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일단 지정되었다면 제대로 지켜야 한다. 지키지도 않을 장애인주일이라면 왜 제정했단 말인가. 지키지 못할 약속이라면 차라리 없는 것이 속편하다. 그것이 장애인주일을 기다리는 교단 내 장애인 교회와 장애인들에게 희망 고문을 당하지 않게하는 일이다. 

장애인주일을 시행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 비록 1년에 단 한번뿐인 주일이지만 제대로 시행만 한다면 장애인에 대한 관심과 인식을 높일 수 있는 효과가 충분히 있다. 따라서 매년 장애인주일을 모자라거나 지나침이 없도록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사랑을 전할 수 있는 마음과 자세 정립이 시급하다.

우선, 교단 총회 차원에서 장애인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장애인 선교와 목회를 위한 실질적인 정책을 뒷받침해야 한다. 총회 차원에서 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기억하고 동참할 수 있도록 독려도 해야 한다. 참여가 낮은 원인부터 밝혀서 개선점을 찾아야 한다.

매년 시행 일자가 달라지는 것도 개선할 여지가 있다. 부활절 다음 주일로 정해지다보니 기억 못하는 경우가 많다. 다른 교단들은 대부분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기준으로 장애인주일을 정했다. 장애인의 날이 있는 4월 셋째 주 혹은 장애인의 날 다음 주일을 시행일로 지키고 있다. 그 다음의 몫은 개 교회이다.

장애인주일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를 계속 연구하고 적극 동참하는 길만이 장애인주일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다. 말로만 장애인주일을 지킬 게 아니라 장애인을 향한 진실한 마음과 그들에게 한걸음 더 다가가려는 노력부터 하자. 장애인주일은 장애인을 하나님의 가족으로 바라보는 시각에서부터 출발할 때 비로소 진정성을 담보 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은 장애라는 굴레에 의해 끊임없이 상처받고 사회적 편견의 벽에 갇혀 좌절을 겪을 때가 많다. 우리나라 기독교 복음화율은 20%에 이른다. 그러나 장애인 복음화율은 3%에 불과하다. 장애인에 대한 한국교회의 무관심을 대변하는 수치라고 볼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낮은 곳에 임하셔서 가난하고 소외되고 병든 자들과 함께하며 사역하셨던 것이 무색할 정도다. 교회가 먼저 장애인들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어야 한다.

장애인이나 사회적 약자를 배제하고 교회가 역할과 사명을 감당한다는 것은 왜곡이고 위선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소통하고 연합하는 공동체, 그것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참모습이다. 우리 성결교회는 장애인주일을 제대로 시행하지 않고는 성결교회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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