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좀 더 비싼 너로 만들어주겠어/네 옆에 앉아 있는 그 애보다 더/하나씩 머리를 밟고 올라서도록 해/좀 더 잘난 네가 될 수가 있어”(서태지와 아이들, ‘교실 이데아’)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를 아무리 목청껏 외쳐도 끝없는 서열경쟁으로 내몰리던 청소년들을 향해 서태지는 ‘교실 이데아’를 노래했었다. 한편으로는 다투지 말라고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경쟁을 부추기는 어른들의 세상을 속 시원하게 긁었던 것이다.

▨… 서태지를 제쳐놓더라도 청소년의 위치에서 보면 어른들은 언제나 자신도 지키지 못하는 칸트식의 ‘정언적 명령’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으면서 줄기차게 내뱉는다. “네 의지의 준칙이 항상 동시에 보편적인 입법의 원리로서 타당할 수 있도록 행위하라.”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구별되어지는 가장 중요한 특성은 도덕성에 있음을 칸트의 십분의 일 만큼도 긍정하지 않으면서도….

▨… 예수께서는 어쩌면 더 가혹한 명령을 그를 따르노라고 고백하는 자들에게 주셨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황금률) 예수께서는 어쩌자고 이렇게 난감한 명령을 이 시대의 제자들에게 주셨을까. 예수께서는 현대사회의 생존의 법칙을, 그 냉혹함을 예측하지 못하셨던 것일까. 아닐 것이다. 이 ‘불가능한 가능성’(R.니버) 뒤에 감춰져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가리켜 주기 위함일 것이다.

▨… 현대인의 삶은 조직적인 사회생활을 전제한다. 사회생활은 또한 개인으로서의 인간 상호작용을 전제한다. 이 인간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힘은 인간의 도덕성이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이 도덕성이 ‘하나님의 형상’에서 비롯되어졌다고 믿는다.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려 인간의 도덕성이 무너진다면 하나님의 나라는 카인의 후예들의 희롱물로 곤두박질칠 것이다. 그 대체적인 모습을 ‘교실 이데아’의 경쟁풍토를 통해서 유추할 수 있으리라. 너무도 끔찍하겠지만.

▨… “그 연유가 어떻든 한 지방회에서 총회장과 부총회장 후보를 동시에 등록하는 상황은 피해야 한다는 판단에서 금년 부총회장 출마를 내려놓기로 하였습니다.” 한모 목사는 부총회장 입후보 등록을 포기하면서 한국성결신문에 소회를 밝혔다. 그 광고에서 한모 목사는 성결인 목사들의 경쟁은 하나님의 일을 위한 것이기에 그 바른 길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를 보여주었다. 우리 성결교회에는 아직 희망이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설마 이 일로 지방회가 또 논란 속에 빠지지는 않으리라는 것도 성결인의 기대임을 밝혀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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