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동 꺼요”

주유가 막 끝나고 시동을 거는 순간 외마디 비명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차에 불이라도 붙었나 싶은 불길한 생각에 황급히 엔진을 껐다.

주유한 젊은이가 얼굴이 벌건 채 달려왔다. “어르신! 죄송합니다. 휘발유를 넣었습니다.” 상황을 알아차린 소장도 달려와 머리를 숙인 채 어쩔 줄 몰라 했다. “기름 탱크를 비워 청소하고 엔진도 손을 봐야합니다. 아무래도 한 시간 이상 걸릴 것 같습니다. 집에 가 계시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소장이 말했다.

은퇴 후 소형 경유차를 구입하곤 우리 집에서 불과 300미터 거리의 그 주유소를 줄곧 이용했었다. 큰 고객은 아니어도 단골인 셈이다. 소장은 오륙 년 전부터 주유소를 운영관리해 와 잘 아는 사이다.

주유했던 젊은이는 원래는 주유소에서 100미터 쯤 떨어진 횡단보도 곁에서 포장마차를 했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오후 1시쯤이면 집에서 준비한 떡볶이며 튀김이며 오뎅이며 가득 실은 리어카를 아내와 함께 힘겹게 끌고 우리 집 앞 골목을 지나 다녔다. 그래서 큰 길을 건널 때마다 그 얼굴을 보았었다. 그러던 그가 6개월 전부터 포장마차는 아내에게 맡기고 주유소에서 일을 했다. 부부가 함께 매달릴 만큼 장사가 잘 되지는 않았나 싶었다.

볼일이 있어 먼 길을 떠나려던 참에 뜻밖의 사건이 터져 속이 많이 상했지만  차마 두 사람 얼굴에 대고 뭐라 따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 순간, 며칠 전 일이 번개처럼 떠올랐다. 차를 가지고 아내와 함께 주일예배를 드리고 돌아오는데 2차선으로 오고 있었다. 사거리에서 황색 신호등이 켜져 멈추려다가 우회전을 해도 갈 수 있어서 막 방향을 바꾸려는 찰라 3차선에서 집채만큼 큰 화물 트럭이 쏜 살같이 직진을 했다. 몹시 급했던 모양이다. 불과 10cm가 될까 말까한 간격을 두고 비호처럼 지나는 바람에 내 차가 크게 흔들렸다.

아찔한 순간, 0.1초만 빠르게 우회전했더라면 우리 부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은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깜짝 놀란 아내가 긴 한숨을 쉬며 가슴을 쓸어내렸고 나 역시 등허리에 진땀이 났다. 그 생각이 떠오르자 이상하게도 치밀던 화는 온 데 간 데 없어지고 헝클어진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평안이 생겼다.

“괜찮아요. 실수는 누구도 할 수 있어요,”

집에 와 연락을 기다리는 동안도 마음이 담담하고 평화로웠다. 한 시간 반 만에 주유소에서 연락이 왔다. 차를 내어주면서 소장이 또 한 번 머리 숙여 사죄했다.

“아니! 아니! 괜찮다니까요. 다만 부탁인데 그 사람 잘 데리고 있어야 해요.일 저질렀다고 내보내면 나도 이 집에 발 끊을 거야! 알았지요?” 당부하고 돌아섰다.

내 지난날을 돌아보면 많이 옹졸했었다. 세상사가 지나고 보면 다 그렇고 그런 건데도 경우를 따지고 시시비비를 가리려고 얼굴 붉힌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남들과도 그랬고 아내와도 그랬다. 그렇게 한 바탕을 하고 나면 영락없이 뒷맛이 씁쓸하고 내가 목사가 맞는가 싶도록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철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그러던 내게 변화가 생긴다. 누구의 실수나 잘못을 보면 가엾은 생각이 든다. 정죄하기보다 위로하고 싶다. 작은 긍휼인가보다. 나이 들면서 체력도 기억력도 소화력도 청력도 시력도, 몸 안에 든 것 중 어느 것 하나 쇠퇴하지 않은 게 없어 서글프다. 그럴 줄 아신 하나님이 위로하시려고 감춰두셨던 마지막 선물을 주신걸까? 누구라도 이웃으로 여긴다면, 죽음 바로 앞에 서 본다면, 너그러움이 봄의 새 순처럼 돋아날 것만 같다.

모든 걸 잃고도 너그러움만 내 안에서 푸른 숲처럼 무성해진다면 결코 노년이 서글픈 세월은 아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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