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석웅 목사
살면서 늘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막상 무언가 필요할 때가 되면 정작 꼭 있어야할 그것이 그 순간에는 어디로 갔는지 없어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해서 몇몇의 여인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모신 무덤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무덤을 향해 가면서 걱정하는 소리를 합니다. 본문 마가복음 16장 3절입니다.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이 때 필요한 것이 믿음입니다. 부활하시겠다고 약속하신 주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이들이 고민해야할 문제는 ‘누가 무덤 문의 돌을 옮겨줄 것인가’가 아닙니다. ‘우리가 부활의 주님을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를 고민했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여인들에게 예수님을 사모하고, 사랑하고,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은 간절했지만, 예수님이 하신 ‘내가 죽은 자 가운데서 3일 만에 부활할 것이다’라는 말씀을 믿는 믿음은 없었습니다.

믿음이 없는 자는 근심합니다. 같은 내용을 다루는 누가복음 24장에는 이 여인들이 예수님의 시체가 보이지 않은 것을 보고 근심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아닙니다. 예수님의 시체가 보이지 않는 것은 근심할 일이 아니라 기뻐해야할 일입니다. 주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을 확인하고 오히려 더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근심했습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우리가 근심하고 있는 일이 정말 근심할 일인가 다시 한 번 더 깊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신앙은 해석입니다.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믿음으로 재해석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믿음으로 재해석을 하면 지금 나를 근심하게 만드는 그 일이 기뻐할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지금 나를 힘들게 하는 그 일이 나로 하여금 더 주님을 의지하게 만들고 주님을 더 사랑하게 만들어 줍니다. 내 신앙을 더 성숙하게 만들어 줍니다.

존경하는 선배 목사님이 목사 안수를 받을 때 성구를 써서 액자를 만들 선물을 해 주셨습니다. 그 액자에는 사도 바울의 고백인 고린도후서 6장 10절의 말씀이 적혀져 있었습니다.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근심하는 자 같지만 항상 기뻐하는 자들입니다. 가난한 자들 같지만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만들어 주는 사람들입니다. 아무 것도 없는 자들 같지만 천국을 소유한 자들입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우리는 근심을 기쁨으로 바꿀 줄 알아야 합니다.

또한 믿음이 없으면 헛걸음질을 합니다. 여인들이 돌아와서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졌다고 말합니다. 그 때 제자들은 이렇게 말했었어야 합니다.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 못하느냐? 왜 그걸 믿지 못하고 쓸데없이 무덤까지 갔느냐”고 말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제자들도 역시 여인들의 말을 듣고 무덤까지 달려가 봅니다. 그러나 역시 무덤에서는 예수님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믿음이 없어서 헛걸음질을 한 것입니다.

제자들의 삶에 믿음이 가장 필요한 때는 바로 그 때였습니다. 다시 부활하겠다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그 말씀을 믿는 믿음이 순간에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여인들도, 제자들도 그런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근심했습니다. 그래서 헛수고 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근심합니다. 헛걸음질합니다.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이 적어도 2가지입니다. 첫째는 주님이 하신 말씀들을 기억해내는 것입니다. 둘째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어떤 문제가 있을 때마다 이럴 때 예수님은 무어라고 말씀하셨는가를 기억해내야 합니다. 그 문제, 그 상황에 대해 주님이 하신 말씀을 기억해내고 그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 그 문제들을 해석하고 그 상황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마리아와 마르다는 무덤 문이 열려져 있고, 예수님의 시체가 보이지 않는 그 상황을 보고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기억해내야 했었습니다. “아, 맞아. 우리가 깜빡했구나. 예수님께서 죽으셨지만 3일 만에 부활하신다고 했었지”하면서 기뻐했었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이 필요할 때마다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나게 해 주신 분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중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여인들이 빈 무덤을 보고 염려하고 낙심하자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말합니다.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그 소식을 가서 전하라고 합니다. 놀라운 이 사실을 깨우쳐 준 청년은 천사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 적용하면 성령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음을 말씀하시자 두려움에 떠는 제자들에게 해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의 말씀입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예수 부활 신앙을 갖고 부활의 증인이 되려면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님이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해 주십니다. 성령님이 그 말씀을 믿는 믿음도 주십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그 말씀에 증인되도록 능력도 주십니다.

그러므로 부활절을 보내면서 우리가 할 일은 우리에게 임하실 성령님을 사모해야 합니다.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불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그럴 때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주신 사명의 말씀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믿음으로 부활절을 맞이합시다. 믿음이 없어 근심하지 말고, 헛된 인생 살지 말고 믿음으로 부활의 증인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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