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 후포교회 세운 신치정 영수 ① - 한국성결신문 한국성결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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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 후포교회 세운 신치정 영수 ①
[1129호] 2018년 03월 28일 (수) 14:07:41 정병수 목사(상계중앙교회) webmaster@kehcnews.co.kr

가난한 집안 막내로 태어난 신치정은 13세 소년으로 가출하여 머나먼 타향에서 자수성가했다. 그러는 동안 예수를 믿었으며, 구습을 타파하고 귀감이 될 만한 신앙인이 되었다. 교회를 설립하고, 중직이 되어 충성을 다했다. 그리고 꿈에도 그리던 고향 땅에 돌아와 전도하여 교회를 설립했다. 경기도 여주 후포교회다. 후포교회를 설립하기 전, 원산에서 장로교회 ‘영수(領袖)’의 직분을 받았는데, 후포교회에서는 지금도 보통 ‘원산할아버지’로 통한다.

1. 출생과 성장
19세기 후반, 서구열강들은 상품시장과 원료공급지를 얻기 위해 아시아를 침략한다. 조선도 프랑스, 러시아, 독일, 미국 등에게 통상을 요구받으나 대원군의 쇄국정책으로 맞서 병인양요, 신미양요 등의 큰 사건을 치른다. 1875년에는 일본 함정 3척이 부산항에 출현하고 강화에서 포격당하는 소위 운양호 사건이 터졌고, 다음해인 1876년에 한국으로서는 최초의 근대식 문호개방조약이라 할 수 있는 조일통상우호조약인 강화도조약이 체결된다.

이처럼 유구한 5,000년 역사에서, 이 민족이 그나마 타의에 의하여 이제 막 긴 잠에서 깨어나 근대화를 향해 간신히 문을 여는 여명기에 신치정은 경기도 양평군 지제면 원산리(평장마을)에서 신 씨 가문의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집안이 너무 가난해 당숙모 되는 원 씨(삽바우할머니) 댁, 경기도 여주군 대신면 후포리(서편마을)에서 자랐다.
 
2. 꿈을 품은 가출소년
신치정이 13세였던 어느 날 편지 한 장 남기지 않고 가출하여 원산까지 갔다. 신치정은 그 어린 나이에 왜 집을 나갔을까? 신치정의 외손녀 윤영희 권사(현재 서울 새문안교회)는 소싯적에 외할아버지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기억이 있다. ‘후포리 사람들은 게으른데다 희망 없이 살았어.’ 그러나 신치정은 꿈을 품은 소년이었다.

비록 가난했지만, 보람 있게 살고 싶었다. 그러니 후포리 사람들이 그의 눈에 차지 않았던 것이다. 계속 후포리에 있는 한, 자기도 그럴 것이고, 그런 식으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분명 개천에서 태어났지만, 미꾸라지만은 아니었다. 당숙모에게 일언반구 의논이나 편지 한 장 남기지 않은 단호한 결심과 행동에서 벌써부터 범상치 않은 됨됨이를 느낄 수 있다.

그러면 어떻게, 왜 원산으로 간 것일까? 신치정이 당시의 시대상을 파악하고 원산을 택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본다. 일단 고향 떠난 후, 여기저기 왕래하며 세상 소식을 접하면서 원산에 대하여 알게 되지 않았을까. 그가 태어난 1875년도 그렇거니와, 그 후로도 조선사회는 끊임없이 변화를 요구받는 소용돌이의 연속이었다. 특히, 1876년 조일통상우호조약인 강화도조약에서 조선은 부산 개항을 약속했고, 이후 일본은 부산, 원산(1880년), 인천(1883년) 등 개항지를 중심으로 경제권을 독점하면서 이 지역들은 신개발지로 급부상하게 된다.

신치정이 고향을 떠난 13세는 1887년으로 이미 원산은 떠오른 신흥개방도시였다. 꿈을 품은 가출소년이 택한 곳으로는 어느 면으로 보나 더없이 괜찮은 곳이다. 이처럼 당시 시국은 심히 혼란스러웠으나 동시에 개혁개방의 시대로 꿈 많은 소년에게는 오히려 걸맞은 시대였다고 생각된다. 다 하나님의 섭리였으리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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