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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과 평화의 상상력
[1124호] 2018년 02월 23일 (금) 14:14:26 지형은 목사 서울제일지방@성락교회

   

▲ 지형은 목사

(서울제일지방 성락교회)

민주주의는 저절로 오지 않는다.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종종 피를 흘리고서야 민주주의가 가능했다. 민주주의만이 아니다. 사람 삶에서 무릇 가치 있고 아름다운 모든 것들이 마찬가지다. 나쁜 것은 애쓰지 않아도 작동한다. 선한 것은 땀과 피를 흘려야 유지되고 회복된다. 선악과 연관된 이런 현상적 구조는 사람의 욕망 때문이다.

욕망은 한계를 모른다. 인륜 도덕이 욕망이라는 전차의 브레이크일 텐데, 그 기능이 허약하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보면 욕망이라는 전차는 브레이크가 없다. 욕망이 질주하면서 아름답고 선한 것들이 망가진다. 사람다움의 가치가 깨져나간다. 더 가지려는 야만의 탐욕이 날뛴다.

욕망의 저변에는 죄의 세력이 도사리고 있다. 죄는 독재와 독점, 탐욕과 미움, 배제와 배타를 부추긴다. 이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는 근원적인 지향점은 평화다. 문제는 삶의 현실에서 평화를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평화라고 하는 것들이 사실은 모조품인 경우가 많다. 권력에 눌린 불편한 침묵, 보복이 두려워 억눌린 동의, 생존을 위한 억지 찬양 등 말이다. 그래서 참된 평화의 길로 가는 데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현실의 통속성을 뛰어넘는 환상을 보아야 한다.

인륜 도덕과 고매한 철학 사상 또는 이른바 고등 종교로 분류되는 모든 종교의 경전에는 공통적으로 평화의 상상력이 담겨 있다. 현상을 조금 더 고치고 한 단계 더 개선하는 정도의 내용이 아니라 탐욕의 현장 저 너머에 있는 절대 평화를 가르치는 말씀들이다. 거룩한 진리의 말씀인 성경에 담긴 평화의 상상력 가운데서 가장 대표적인 구절을 보자. 인류 역사 전체에서 일반적인 문학적 수사나 사상의 깊이로 보아도 이만한 구절이 없을 것이다.

“그 때에는,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새끼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풀을 뜯고, 어린 아이가 그것들을 이끌고 다닌다. 암소와 곰이 서로 벗이 되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누우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는다. 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 곁에서 장난하고, 젖뗀 아이가 살무사의 굴에 손을 넣는다.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서로 해치거나 파괴하는 일이 없다.’ 물이 바다를 채우듯, 주님을 아는 지식이 땅에 가득하기 때문이다.”

이사야서 11장 6~9절이다. 선지자 이사야는 주전 8세기 후반에 예루살렘에서 활동했다. 그가 살았던 시대가 평화로웠던가. 결코 아니었다. 이스라엘 민족은 남북으로 갈린 상황이었고 이사야가 활동하던 시기에 북왕국이 주전 722년에 아시리아에게 처참하게 짓밟히며 망했다. 남왕국 유다도 아시리아의 힘에 불안에 떠는 상황이었다. 유다 왕국 내부적으로는 사실 문제가 더 심각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비추어 볼 때 신앙과 삶의 타락은 눈뜨고 보지 못할 지경이었다. 이사야서 1장이 시작되면서 곧바로 이스라엘 민족이 소돔과 고모라처럼 망가졌다는 무서운 질책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저토록 가슴 벅찬 평화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일까. 평화와 연관된 저 상상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평창올림픽이 한창 진행 중이다. 평화 올림픽이 되게 해야 한다는 염원이 모두의 마음이다. 남북관계와 연관하여 일부에서 ‘평양 올림픽’이라고 딴지를 걸기도 했지만 별 호응을 받지 못했다. 스포츠가 가지는 힘은 전통적으로 말하면 축제가 인간 삶에 미치는 영향과 같다. 메달을 향해서 치열하게 경쟁하면서도 그 안에서 따뜻하고 감동적인 휴먼 드라마가 펼쳐지고 있다. 눈꼴사나운 장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념과 이해관계로 갈린 심정들이 초절정의 기량에 감탄하면서 절로 풀린다. 더도 덜도 말고 서로를 사람으로 얼싸안는 감동이 일어난다.

평창 이후가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현상을 겁내면서 이루어진 평화는 없다. 조건이 충분히 갖춰져서 순조롭게 도달한 평화는 극히 드물다. 평화로 가는 길이 조짐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평화의 상상력을 발휘한 사람들이 있어서 평화의 길이 열리곤 했다. 현재진행형인 평화의 상상력이 평창 이후에도 계속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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