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하 6:9~12)

조원근 목사
다윗 왕만큼 복을 크게 받은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목동에서 왕으로 통일왕국을 이룩했으며, 그의 후손으로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성경은 훌륭한 믿음의 롤 모델로 다윗 왕을 얘기합니다. 이스라엘이 국기 중심에 다윗의 별을 그려 넣을 정도입니다. 세상에 부러울 게 없는 사람이 다윗일 듯합니다.

그런데, 본문엔 다윗이 유일하게 부러워했던 한 사람이 나옵니다. 12절에 오벧에돔이 법궤를 모셔서 복을 받았다는 말을 다윗이 듣고는 너무나 부러워, 즉시 그 법궤를 모셔오려 오벧에돔의 집으로 갔다고 나옵니다. 한때, 복이라는 말에 거부감이 있었지만 살다보니 모든 게 복임을 깨달았습니다. 순간순간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로 살고 있음이 실감나기 때문입니다.

‘화’ 입는자, ‘복’ 받는자
사무엘하 6장을 보면, 한 사람은 화를 당하고, 한 사람은 큰 복을 받았습니다. 웃사는 큰 화를 당해서 현장에서 즉사했습니다. 반면에 오벧에돔은 자신과 온 집이 큰 복을 받았습니다. 이 사건들은 법궤와 관련이 있습니다. 법궤에는 십계명이 쓰인 두 돌 판과 만나를 담은 항아리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가 들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법궤는 하나님이 여기에 계시다고 주신 증거입니다.

이전 엘리 제사장 때, 블레셋과 전쟁에 법궤를 동원했다가 뺏겼습니다. 블레셋은 재앙을 당하자 떠밀 듯 법궤를 내보냈고, 아비나답의 집에 모셔집니다. 다윗은 왕이 된 후 법궤를 모셔오려 합니다. 수레에 법궤를 싣고 오는 중, 웃사가 흔들리는 법궤를 붙잡았다가 즉사하고 맙니다. 담대했던 다윗은 법궤가 어찌 자기에게 오겠느냐며 모셔 가기를 주저했습니다. 믿음의 사람 다윗도 무서워하고 있으니, 길바닥에 나앉은 법궤를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그때 가드 사람 오벧에돔이 자기 집으로 메어 가겠다고 자원합니다. 집에 법궤를 석 달 모시는 동안에 여호와께서 오벧에돔과 그의 온 집에 복을 주셨다고 11절에 전해줍니다. 법궤를 모시며 오벧에돔은 자신 뿐 아니라, 가족과 사업이 큰 복을 받았습니다. 역대기상 26장에 보면, 오벧에돔의 자손들 모두가 큰 능력을 받아, 크게 쓰임을 받습니다.

이렇게 오벧에돔이 큰 복을 받는다는 소식이 돌고 돌아, 다윗의 귀에 들어갑니다. 오벧에돔이 법궤를 모셔 복 받았음을 알게 되자, 다윗은 너무나 부러워 그냥 있을 수 없었습니다. 다윗이 그길로 가서 하나님의 법궤를 기쁨으로 메고 오벧에돔의 집에서 다윗 성으로 올라왔다고 12절이 전해 줍니다. 어떻게 했기에 오벧에돔이 이처럼 다윗도 부러워할 복을 받았을까요?

희생까지도 떠안는 헌신
오벧에돔은 특별한 장점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법궤를 모셔오겠다고 나섰던 믿음의 용장 다윗왕도 웃사가 화를 당하자 법궤를 겁내며 물러섰다면, 누가 감히 나설 수 있겠습니까? 한데 오벧에돔이 짐을 지겠다며 나섰습니다. 만약 웃사처럼 화를 당해야 한다면, 자기가 당하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

금방 눈앞에서 웃사가 화 당함을 본 상황에서, 오벧에돔은 자기 생명까지 내놓아야 할지도 모르지만, 기꺼이 그것까지도 부담하겠다며 나섰습니다. 그런 헌신에 하나님께서 놀라운 복을 주셨습니다. 이제까지 살아온 모든 게 하나님의 은혜이기에 감사해서, 여기서 자기 인생이 끝난다고 해도 감수하겠다고 결단한 오벧에돔의 헌신에, 다윗도 부러워할 더 큰 은혜를 부어주셨습니다.

항상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아
24시간 법궤와 함께하는 삶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큰 소리를 치거나, 싸우거나, 부정된 짓을 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어쩌다 법궤 앞에서 있든지, 하루 몇 시간 있었다면 몰라도, 아예 집 안에 모셨으니 한 순간도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겁니다. 그러니 하나님 중심으로 살 수밖에 없고, 복을 받을 수밖에요. 오벧에돔은 자기 쉬운대로가 아닌,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왕까지도 부러워할 복을 받았습니다. 화를 당한 웃사는 아버지 때부터 법궤를 모셨지만, 어떻게 모셔야 하는지, 옮길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얘기도 나누지 않았고, 혹 그랬어도 기억하지 못했기에 수레에 싣고 갔고, 만지면서 큰 화를 당했습니다. 그러니 법궤를 옮기는 귀한 일을 하고도 화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3년 동안 주님을 열심히 따랐던 가룟 유다나 복음서의 제자들도 비슷했습니다. 우리도 말로만 코람데오를 말할 뿐, 실제에서는 하나님보다, CCTV를 더 의식하고 있지 않나 반성하게 됩니다. 

우리는 웃사처럼 살고 있습니까? 오벧에돔처럼 살고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너무 영악하게 챙기고, 일마다 이해득실을 따지며 살지 않습니까?

믿음은 근거 없는 맹신이 아닙니다. 움직일 수 없는 하나님의 약속 위에 서서, 나를 포기하고 영원을 받음입니다. 주님은 모든 것을 다 주셨는데 우리가 주님을 위해 내 놓은 것은 무엇입니까? 십자가의 예수님을 얘기하고 말씀을 운운하면서도, 현실에서는 늘 실리만을 좇아가고 있으니, 참된 생명과 하늘나라를 누리지 못한 것이 아닐까요?

새해 오벧에돔 같은 사람이 되고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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