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날 루터의 개가 식탁 곁에 앉아서 주인이 던져줄 고기 한 점을 간절히 쳐다보고 있었다. 큰 입을 벌리고 던져주기만 하면 절대로 놓치지 않으려는 모든 태세를 갖추고  있는 개를 가리키며 루터가 입을 열었다. “이 고깃점을 쳐다보고 있는 개만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개는 오로지 한 점의 고기에 집중하고 있어서, 다른 아무 것을 생각지도, 원하지도, 바라지도 않고 있지 않은가.”(이상범, ‘마르틴 루터의 익살’)

▨… 종교개혁이라는 목숨을 건 싸움을 위해서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으는 자신의 기도를 한 점 고기를 던져줄까 바라보는 개의 시선에 빗대는 루터의 자기비하는 어쩌면 성직자들의 비위를 건드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성직자라면 뉘라서 자신의 기도가 한 점 고기를 얻으려는 개의 배고픔에 견주어지기를 용납하겠는가. 루터가 기도의 신성함을 모독했다고 열을 올릴 수도 있지 않겠는가.

▨… 예수께서는 세리의 기도(눅18장)를 예로 드시며 기도의 진정성을 우리에게 깨우쳐 주셨다. 우리 성결교회는 이 기도의 진정성 위에 설 때 우리의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해주신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이 믿음으로 개척교회의 목사들이, 작은 교회의 목사들이 지하상가교회에서, 월세가 밀린 교회에서 눈물을 흘리며 부르짖고 있다. 그 부르짖음의 절심함을 고기 한점을 구하는 개의 눈길과 어떻게 비교할 수 있으랴!

▨… 이 절실함은 우리교단의 지도자들에게는 상관없는 것일까. 아니면 루터의 자기비하의 익살을 우스갯 소리로만 치부해버리고 기도의 진정성은 개척교회, 작은 교회 성직자들만 감당해야 하는 십자가로 인식하는 것일까. 그렇지않다면 교회정치라는 지도자들만의 놀이판에서는 더 이상 기도의 진정성 문제는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일까.

▨… ‘햄릿’은 숙부가 아버지를 독살하고 어머니를 차지했다는 사실을 알고 숙부 클로디어스를 죽여 복수하고자 한다. 마침 기회가 찾아와 칼을 들었으나 클로디어스가 기도중이라 칼을 거두고 만다. “저 악당을 천국에 보내서 무슨 복수가 되겠는가?” 기도 중이니 죽으면 천국갈 수도 있다는 햄릿의 판단이 조금은 웃기지만, 기도하는 성직자들이 갈 데까지 가보자는 행태는 백보를 양보해도 ‘기도의 진정성’이라는 문제를 곱씹게 만든다. 기도하면서 무슨 짓이냐고 루터가 묻지 않을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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