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국 목사
청명하고 삽삽한 늦가을 날씨가 어디론가 떠나기를 재촉하던 날 온양온천엘 갔다. 보행이 불편해 집 밖에 나서기를 꺼리던 아내가 그 날은 선선히 응하는 바람에 부부나들이를 했다. 물 흐르듯 제 길 찾아 달리는 기차를 타곤 모처럼 여행의 즐거움을 누렸다. 차창 너머론 분주한 가을 풍경이 펼쳐졌다. 엎드려 밭작물을 거두는 농부들이 보이고 논에선 콤바인이 바리캉으로 머리 깎듯 누런 들판을 말끔히 밀어내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손에 손잡고’가 익숙해진 우리는 자리에서도 내내 손을 잡고 있었다. 금년 말이면 우리부부가 결혼 50주년을 맞는다. 혼례를 치른 다음날 온양온천에 들러 하룻밤을 묵었었다. 그 날도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온양역에 내릴 때까지 손을 잡고 있었다. 그 때 잡던 손이 훨씬 부드럽고 따뜻했는데 지금 손이 더 미덥고 든든한 건 세월의 무게 탓인가보다.

먼저 도착한 친구들 부부를 역에서 만났다. 동반여행이 어려워 혼자 온 친구도 있었다. 

동창들을 초청한 친구가 아내와 함께 차를 가지고 역으로 마중을 왔다. 이십여 명이 함께 이동하기 위해 천안에서 목회하는 아들 교회의 승합차까지 동원했다. 그의 얼굴을 본 건 꽤 오랜만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몇 달에 한 번 모이는 성광회 모임에 나오더니 금년에는 통 보이지 않았다. 건강이 더 안 좋아 보였다. 그런 몸으로 불러준 게 고마우면서도 그 동안 전화 한 통을 못해서 미안했다. 

안내 받은 식당은 차로 오 분 거리에 있었다. ‘은행나무집’ 상호가 걸린 그 식당은 오리 고기가 전문이다. 찜을 먹고 나니  백숙이 나오고 이어서 죽이 나 왔다. “ 꽥~ 꽥~ ” 오리 소리가 목구멍에서 나올 만큼 포식을 했다. 그 정도의 대접으로 돌려보낼 줄 알았더니 웬걸, 실어다가 온천탕 문 앞에 내려놓았다.

60년 지기인 우리들이 언제 이런 벌거숭이로 함께 목욕을 했었는지 기억이 없다. 누가 세월의 파편을 피해 갈 수 있으랴 싶게 처량해 보이는 알몸들, 그런 중에도 온양친구의 몸매가 가장 보기 안쓰러웠다. 한 쪽을 쓰지 못해 몸의 균형이 흐트러졌다. 그 몸으로 우리를 발가벗겨 탕에 몰아넣고 넘어질 듯 넘어질 듯 비틀걸음으로 탕에 들어왔다.

그 친구가 다시 보였다. 나라면 과연 이런 배려를 할 수 있었을까 싶다. 탕에서 모두들 나오고 그와 나만이 남았다. 등이라도 씻어주며 고마움과 미안함을 뭉뚱그려 표시하고 싶었는데 한사코 사양하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

우리를 이번에는 자기 아파트로 안내하고 준비한 다과를 내놓았다. 땀 흘리고 난 갈증으로 정신없이 벌컥벌컥 마시고 서걱서걱 씹었다. 더 먹을 수 없도록 배가 불렀다. 어느새 가을 햇살은 힘없이 석양으로 기울었고 어둡기 전에 출발하자고 모두들 서둘렀다.

기차역으로 가리라 생각했는데 내려놓은 곳은 어느 식당 앞이었다. 억지로 끌려들어가 추어탕으로 저녁까지 먹었다. 돌려보내면서, 천안의 명물 호두과자 한 상자씩을 안겨 주고 그의 아내가 손수 만든 예쁜 봉투에 교통비까지 담아 건네주곤 손을 흔들어 주던 친구 부부.

기차를 타고 오면서는 하루의 일들을 돌아보았다. 목의 때, 몸의 때, 쌓인 시름의 때까지 벗겨 보내주는 친구가 한 없이 고마웠다. 집에 다 오도록 씽긋 웃는 그의 얼굴이 환상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가 손에 들려준 성찰의 채찍이 내 가슴을 두드려 얼얼했다. 그는 평생을 그렇게, 따뜻한 가슴으로 성도들을 보듬어 목회해 지금까지도 그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다.

늦가을, 흩날려 떨어지는 고운 단풍잎이 그의 모습을 닮은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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