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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로 추대된 원팔연 목사
언제나 하나님 편에 선 우직한 목회자
[1114호] 2017년 11월 29일 (수) 16:06:28 황승영 기자 windvoic@hanmail.net
   

46년 목회 여정을 마친 원팔연 목사는 전주 다가동 일곱 집사가 시작한 바울교회를 호남 최대 교회로 만들었다. 교단에서 처음으로 1만 성도를 일궜다.

그는 한사코 부인하지만 바울교회의 성장 비결은 원 목사의 충실한 사역과 목회적 열정이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 평가다. 외부 부흥회를 나가도 반드시 금요철야 기도회만큼은 직접 인도했으며, 새벽 1~2시에 귀가해도 새벽기도회를 쉬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고 주변 성도들은 말한다. 성도들이 심방을 원하면 밤이나 새벽이나 가릴 것이 달려갔다. 이런 성실함과 열정이 성도들에게 신뢰를 주었고, 지금의 바울교회를 이루는데 밑거름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남들과 다른 길을 걸었다. 불교가정에서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사월 초파일에 출생했다고 해서 불교의 상징인 연꽃 연(淵)자를 넣어 이름이 ‘팔연’이 됐다.

중학교 시절, 친구 임창희 목사(은행동교회)의 전도로 교회에 출석하게 된 그는 전주교회에서 처음 나간 새벽예배에서 이대준 목사의 말씀을 듣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성령체험을 했다. 이후 그는 새벽예배와 공예배를 한번도 빠지 않았고, 하나님의 종이 되겠다고 결심한 후 성결신학교에 진학했다. 하지만 신학교 졸업 후 갈 곳이 없었다. 그래서 기도원에 올라갔다.

“금식기도를 하는데, 끝날 무렵 하나님께서 한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셨어요. 작정 기도를 마치고 집에 와보니 등기우편으로 청빙서가 와있더라고요. 가보니 놀랍게도 기도 중에 보았던 교회의 모습 그대로였어요.”

그 교회가 바로 원 목사의 첫 부임지인 삼천포 앞바다에 있는 신흥교회였다. 이후 그는 33세에 정읍교회 담임목사로 청빙 받았다. 4년 만에 250명이던 교회를 450명으로 부흥시켰다. 그런데 원 목사는 안정된 목회지를 떠나 당시 개척교회였던 동전주교회(바울교회 전신)로 옮겼다. 소신 있는 목회를 위해서 어렵게 결정한 일이다. 그러나 주변에서 “역시 그릇이 작다. 큰 인물이 못된다”고 말이 많았다. 그는 참고 참으며 목표를 세운대로 정진했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세계는 바울교회의 교구’라는 비전으로 실행에 옮겼다.

원 목사는 외유내강형 인물이다. 누구든 밝은 미소와 온화한 표정으로 사람을 편하게 대한다. 원 목사는 또한 절대 남에게 불이익을 주는 일은 일체 관여하지 않았다. 총회장 시절, 총회 재판위원회 징계 건에 단 한 차례도 사인을 하지 않았던 일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 일화로 남았다. 총회장 취임 당시 그는 “교단의 위상을 높이는데 힘쓰고, 절대 다른 사람에게 불이익을 주는 일에 참여하지 않으며, 누구하고도 싸우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을 지켰다.

그가 교단의 부흥에 기여한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전국 목회자 전도대회를 열어 곳곳에서 전도에 대한 열정이 일어났고 성장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원 총회장 재임 시절 시작된 전도의 바람은 주남석 총회장 시절에도 계속됐다.

교단의 위상을 높이는데도 그는 앞장섰다. 엘에이와 뉴욕의 할렐루야대회, 캐나다 토론토지역 연합성회 등 세계를 누비며 성결의 복음을 외쳤다. 한국교회의 대표부흥사, 홀리스피리츠맨 메달리온상, 자랑스런 지도자상(부흥사 부문), 대한민국을 빛낸 위대한 인물대상 등은 결코 우연히 받은 상이 아니다.

원 목사는 인재 양성에도 주력했다. 우간다 쿠미대학의 초대 총장 재임 시절에는 척박한 땅에 미래 희망의 씨앗을 심고, 맑은 영혼을 영적 지도자로 키우는데 일조했다. 또 필리핀에 바울대학교를 세우고 지금까지 현지인 양성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국내에서도 서울신학대학교 이사장과 전주대학교 이사 등으로 활동하면서 기독교 지도자 양성을 측면에서 지원했다. 그는 은퇴 후에 “교단과 교계에서 다양한 활동을 했지만 개인적으로 사람을 키우고, 인재를 발굴하는 일이 가장 보람이 컸다”고 밝혔다.

바울사도의 심정으로 평생을 목양일념으로 살아온 그는 정년을 앞두고 교회의 새로운 변화를 위해 미련 없이 담임목사직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12년 동안 기도해온 후임자를 청빙한 후 “소신껏 목회하라”며 주거지를 서울로 옮겼다. 신용수 신임 담임목사를 응원하고 사기를 높이기 위해 승용차를 선물한 것에서도 후임 목회자를 향한 사랑을 알 수 있다.

언제나 하나님 편에서 우직하게 목회의 길을 걸어온 원팔연 목사, 그는 지금 하나님의 역사를 향한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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