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신 장로
대학교 3학년 때에 교육학을 가르치시던 교수님 한 분이 독일어 성경을 강의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참석하여 큰 도전을 받은 기억이 난다. 그 때 나는 처음으로 ‘빈들에 마른 풀같이 시들은 나의 영혼’이란 찬송을 배웠고 그 찬송에 많은 은혜를 받았는데 그 독일어 성경시간이 오래가지 못한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나는 그 교수님의 신앙과 열정을 참으로 존경했다. 나는 왜 그런 교수가 되지 못했을까 후회가 된다.

내가 유일하게 영어성경구절을 정식 영어강의 시간에 가르친 것은 예수님의 황금률이란 단어가 교과서에 나왔을 때였다. 나는 일찍이 황금률(마 7:12)을 영어로 외우고 있었기 때문에 칠판에다 그것을 쓰고 학생들에게 문법적인 설명까지 곁들여가며 가르쳤다.

나는 대학교수로 재직할 때 UBF(대학생성경읽기회)의 지도교수가 되어달라는 학생들의 요청에 기꺼이 응하여, 나의 참석이 필요한 모임에는 반드시 가서 그들을 격려하였다.

한국남단도시에서 모인 그 UBF가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어 CCC(대학생선교회)와 쌍벽을 이루게 된 것은 참으로 기쁘기 짝이 없었다.

더구나 내 모교에서 교목과 교장을 지내신 김준곤 목사님이 한국에 CCC를 도입하여 돌아가실 때까지 대학생 선교에 열정을 쏟으셨던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존경스럽다. 또 목사님이 교장으로 계셨던 때에 교사로 있었던 나의 감격은 이루다 말할 수 없었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교수로서 정년퇴직했으나 어느 신학대학교에서 5년간 교양영어 강사로 교육인생을 이어간 것을 너무 감사하게 생각한다.

나는 신학생이라면 읽어야 할 글들을 선택하여 가르쳤다. 예를 들면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의 ‘I have a dream’(내게는 꿈이 있다)이나 헬렌 켈러의 ‘Three Days to See’(사흘 동안만 눈을 뜰 수 있다면) 등이 아주 중요한 것이라고 믿고 가르쳤다.

하나님께서는 2007년부터 어느 노인종합복지관에서 어르신들에게 영어를 가르칠 기회를 나에게 주셨는데 복지관에서만 통할 수 있는 Too-to 강사다. 이것은 “너무 젊어서 은퇴할 수 없다(Too young to retire)”는 뜻을 가진 강사이니 노인이 세상천지 어디에서 이런 대우를 받을 수 있겠는가. 황혼기에 들어선 어르신들에게 희망과 자신감을 주는 복지의 세계가 아닐 수 없다.

강의는 점심식사 후 1시부터였다. 나는 크리스천 교수로서 어르신들께 영어성경을 어떻게 하면 가르칠 수 있을지 고민하였다. 어르신들에게 나는 용기를 내어 여쭈었다. “점심을 조금 일찍 드시고 12시 20분부터 영어성경을 공부함이 어떻겠습니까?” 전부 좋다고 하셨다. 어르신들은 천주교, 개신교 및 무종교 등 모두가 같은 종교는 아니었으나, 종교와 무관하게 영어성경을 꼭 배우고 싶다고 하였다.

국제 기드온협회에서 호텔용으로 쓰는 뉴 킹 제임스 버전을 교재로 사용했다. 영한대조로 된 것이었다. 복지관에서 나의 모든 수업은 어르신들이 모두 한 사람씩 참여하는 수업이다. 학생 수가 많았던 중·고등, 대학교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수업방법이다. 특별한 이유가 없을 때를 제외하고 반드시 몇 문장씩 읽고 해석을 시킨다. 영어성경도 마찬가지다.

뿐만 아니라 어르신들의 성함을 반드시 외워서 호명을 하고 부탁한다. 내 반은 15명 내지 30명 정도이므로 성함을 외우는 것은 문제가 없었다.

영어성경을 강의할 때 비록 신학교는 안 다녔으나 일생동안 여러 목사님들에게서 들은 설교말씀에 의지하여 내 나름대로 설명을 했다. 자신이 없는 부분은 성경사전을 비롯하여 주석도 참고하였다. 그런데 최근에 영어성경시간에 나는 큰일을 당했다. 그것은 성경해설에 열을 내며 수업하던 나는 키 큰 분 뒤에 계셨던 어르신을 보지 못하고 호명을 건너뛴 일이 몇 번 있었던 것이다.

뒤에 앉으신 어르신 한 분이 “왜 나는 빼십니까?”라며 큰 소리로 화를 내셨다. 오늘이 처음이라면 아무 말 않겠지만 벌써 여러 번이란 것이다. 나는 백내장 수술을 한 눈을 핑계대며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내 죄를 용서해달라고 애원하였다. 그 분은 너무 화가 나서 교실을 박차고 나가셨다. 약 1주일이 지나자 그 분은 나의 사과를 받고 다시 출석하셨다.

옛날 관례대로 “그 다음 분 하세요”라고 했더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지나친 친절이 화를 불렀다. 나는 호명과 지명을 할 때 좀 더 정확하게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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