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5년 4월 8일 일요일, 본회퍼 목사는 간소한 예배를 인도했고 우리 모두의 심금을 울리는 말씀을 전해주었다. …그가 마지막 기도를 마치자 평복 차림의 두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와서 불렀다. ‘죄수 본회퍼, 따라오라.’ 우리는 그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그는 나를 붙잡고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죠, 그러나 나에게는 생의 시작입니다’라고 말했다. 다음 날 그는 플로센부르크에서 죽었다.” (신도의 공동생활·문익환 옮김)

▨… 감방에서 부활주일 아침예배를 인도한 본회퍼 목사는 예배가 끝나자마자 간수의 호출을 받았고 그 다음날 새벽 교수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사형을 기다리면서도 감방에서 부활주일 아침예배를 인도하고 말씀을 전한 본회퍼 목사는 그날의 예배인도를 자신의 직업 업무수행이라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calling)을 감당하는 행위라고 확신했을까.

▨… 내년에는 종교인에 대한 과세가 실시될 것이라고 한다. 소득이 있는 곳에 과세가 따라야 한다는 원칙에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어서인지 우리 교단의 많은 목회자들도 종교인과세에 대하여 찬성표를 던졌다. (참고, 한국성결신문 제1103호) 그러나 더 많은 목회자들의 표정은 떨떠름하기만 하다. 납세가 국민의 의무라는 사실에는 동의하지만, 그래서 당당한 국민이 되고 싶기도 하지만, 목회활동을 근로소득세와 기타 소득세의 범주에 포함시키는 것에는 볼일보고 밑 안닦은 것처럼 전혀 개운치가 않은 것이다.

▨… 한국교회는 그 형성 초기부터 목회자에 대한 예우를 ‘생활비’, ‘사례비’, ‘목회활동비’로 표현했다. 그것은 직업인에게 지급되는 급여와는 다른 개념이었다. 목회자 자신들도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일을 소명으로 받아들였고 그것을 긍지로 간직했다. 그 이유로 목사들은 밥을 굶으면서도 개척교회를 붙들었고 평생을 가난에 쫓기면서도 지하실 마루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 종교인 과세, 그 방향은 옳다. 그러나 목사의 일은 직업란에서는 비록 목사라고 표기되더라도 ‘소명’의 의미가 퇴색되어진다면 목사의 긍지는 그것을 용납할 수 없다. 근로소득세나 기타소득세가 아니라 목사의 소명의식을 모욕하지 않는 세금명을 고안해서 목사들이 자발적으로 납세의 의무를 감당하게 할 길은 없는지 법 제정자들에게 묻고 싶다. 목사의 길이 아직은 직업(job)이 아니라 소명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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