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손에 의해 서울서 처음으로 개척된 교회 - 한국성결신문 한국성결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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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손에 의해 서울서 처음으로 개척된 교회
한우리교회 100년 史
평신도 의해 시작 등 여성 활약 커
불타는 구령열로 초기 가파른 성장
해외선교사 파송·국내외 선교 모범
[1106호] 2017년 09월 27일 (수) 15:53:13 황승영 기자·남원준 기자 webmaster@kehcnews.co.kr
   

창립 100주년을 맞은 한우리교회는 성결인 평신도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자부심이 강하다. 당시 선교사나 선교부의 도움을 받아 시작되지 않았다. 본부에서 교역자를 파송해 세운 교회도 아니었다.

성결교회의 모교인 무교정교회(현 중앙교회)는 서울지역 교회확장을 위해 전략적으로 한우리교회를 지교회로 개척한 것이다. 이것은 매우 이례적이고 역사적인 의미가 깊다.

김문기 교수는 “1929년 5월말까지 성결교회 64개 교회 중에서 50개 교회는 동양선교회가 개척한 교회이고 한국인에 의해 세워진 교회는 14개에 불과했다”면서 한우리교회의 설립 과정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이렇게 복음에 열정을 가지고 탄생한 한우리교회는 유난히 구령열이 뜨거웠다.

한우리교회 설립 초기의 또 다른 특징은 평신도의 활약, 특히 여성도들의 활약이 컸다는 점이다. 1917년 교회가 시작되었지만 교역자가 파송된 1920년까지 교역자 없이 평신도들, 특히 여성도 중심으로 교회가 운영되었다. 여성도들은 주중에도 자체 기도 모임을 가졌으며, 자치 조직인 부인회도 조직했다. 또 초기부터 전도활동을 활발히 벌였다. 교우들이 함께 할 예배 처소도 스스로 마련하는 등 평신도들의 자발적인 활동이 교회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 교회의 부흥이 이어지면서 무교정교회는 1923년 3월 한우리교회(구 독립문교회)를 독립시키고 최석모 목사를 초대 주임 교역자로, 김명석 씨를 부교역자로, 이유겸 씨를 여교역자로 파송했다. 이후에도 예배당이 좁을 정도로 교회는 날로 부흥했다.

초기 성도들의 열정과 헌신으로 1925년 6월 첫 예배당을 건축했다. 본부가 2,000환을 지원했고 교회도 800환을 보탰다. 성도들이 또 750환의 큰 돈을 헌금해 주택까지 매입, 1928년에는 여교역자 주택을 신축했다. 교회는 설립 10여년 만에 신자 수가 120명으로 급성장했고 1930년 4월 성도들에게 존경을 받던 김황태 집사를 초대장로로 세우기도 했다.

일제 치하와 6·25전쟁 때 시련 깊어
그러나 급성장 하던 한우리교회는 일제의 모진 탄압으로 시련도 겪는다. 1943년 5월 당시 교역자인 유세근 목사가 검거되고 교회도 강제 해산됐다. 암흑기나 다름 없었던 1931년부터 1945년 8월 15일 해방 전까지는 정확한 자료도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고초를 겪었다.

해방 후 당시 박형규 목사를 제11대 담임목사로 청빙해 교회를 재건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6.25전쟁 발발 후 유세근 목사가 납북되면서 약 4개월간 예배가 다시 중지되었다. 그렇지만 성도들은 포기하지 않고 피난 간 부산 영도에서 김인동 집사의 가정에서 예배를 드렸다. 또 피난가지 못한 성도들도 서울 충정로의 송영숙 집사 가정에서 예배를 이어갔다. 

순교의 정신으로 목회한 목자들
한우리교회가 시련을 겪으면서도 무너지지 않고 재기할 수 있었던 것은 역대 담임목사들의 순교적 신앙 때문이었다. 민족의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한우리교회를 이끌었던 초대 담임 최석모 목사, 2대 박현명 목사, 유세근 목사 등 여러 교역자들이 납북되었다. 이들은 피난가지 않고 교회와 신학교를 지키다 공산당원에 의해 끌려가 순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도 성결교회의 사부 이명직 목사, 성결대 설립자 김응조 목사, 교단 총무를 지낸 김동완 목사 등 기라성 같은 목사들이 한우리교회의 부흥을 이끌었다. 이런 부흥의 역사를 이어받은 사람이 임영재 목사와 백장흠 목사다. 

한우리교회는 1983년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지금의 서울 강남구 도곡동으로 교회당을 이전하고 강남시대를 열었다. 성전 건축을 시작한 지 2년만인 1983년 5월 22일 입당예배를 드렸다. 제4차 새 성전 건축으로 교회 부흥이 더욱 가속화 돼 1986년 3개의 남전도회가 5개로, 8개 여전도회는 12개로 확대, 개편되었다. 1987년에는 성도가 5,500여 명에 이르는 큰 교회로 성장했다.

1991년 12월 20대 담임으로 부임한 백장흠 목사는 국내외 선교에 크게 힘써 선교사 파송과 해외 및 국내에 지교회를 잇따라 세웠다. 또 2003년 지하 1층, 지상 7층 894평 규모의 비전센터를 건립하고 크로스웨이 성경공부를 통해 평신도 지도자를 양성했다. 1995년에는 사랑어린이집과 결혼상담소를 개설해 운영하고, 1999년 장로성가단 조직, 2002년 외국인을 위한 영어예배 개설, 2005년 한우리아카데미 개원 등 새로운 도약과 변화를 시도했다. 그리고 2004년 지역과 보다 밀착하기 위해 ‘한우리교회’로 명칭 변경을 확정했다. 

2012년 7월 제21대 담임 윤창용 목사의 부임으로 젊은 리더십으로 교체된 이후 국내외 선교에 박차를 가하며 건강한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윤 목사는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100주년 기념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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