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권 장로
대한항공 땅콩회항사건에 이어 최근 제약회사 종근당 회장의 운전기사에 대한 비인격적 행위 등 재벌들이 언론의 뭇매를 맞는 것을 보면서 사회지도층의 윤리적 기준인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떠올렸다. 노블리스 오브리제는 높은 신분, 많은 재산 등의 혜택을 누리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 즉 지위가 높으면 덕도 높아야 한다는 뜻이다.

한국에서 노블리스 오블리제하면 경주 최 부자일가의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그는 경주뿐만 아니라 경상도 제일의 부자였다한다.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의 벼슬을 하지말라 하였고, 주변 100리 안에 굶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고 하였다. 만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는 등 그집안의 가훈은 유명하다.

부자 3대를 못간다했는데 1대 최진립부터 시작하여 12대 최준에 까지 이른다. “나라가 없으면 부자도 없다"며 독립운동자금에 재산을 내 놓고 광복 후에는 교육사업을 위하여 전재산을 기부하기까지 300년간 12대를 이어오는 동안 최 부잣집 창고는 쌀 800석을 보관할 수 있는 현존하는 가장 크고 오래된 목조곳간으로 알려졌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왔던 선행 덕분에 부호들의 재물을 탈취한 활빈당의 불길속에서도 살아남는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표현은 프랑스의 작가 오노레드 발자크의 1836년 소설 ‘골짜기의 백합’에 처음 등장한다. 이 소설은 젊은 청년과 귀부인의 플라토닉한 사랑을 다룬 러브 스토리이다.

주인공인 펠릭스가 출세를 위해 파리로 떠나게 되자 앙리에트는 그를 위해 자신의 진심을 담은 편지를 쓴다. “진정한 명예는 돈이나 높은 사회적 위치로부터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개인만이 진정으로 존경받을 가치가 있음을 말한다. 즉 의원직에 있는 공작은 빈곤한 사람들과 수공업자들보다 더 많은 의무를 지게 되는데 의무는 사회가 주는 혜택을 더 많이 누리는 자들에게 부여되는 것이다."

초기 로마사회는 기본적으로 사회지도층이 공공봉사나 기부, 헌납을 하는 전통이 매우 강했다고 한다. 특히 전쟁이 나면 사회 지도층이 참여하는 것을 명예롭게 여겼다. 영국 왕실의 ‘해리왕자’는 왕실 근위 기병대 소속이다. 그는 아프간 전쟁에 파병되는데 그가 배치된 곳은 치열한 교전지로, 남부 헬만드주 탈레반 진지에서 겨우 500야드(약 460m)떨어진 위험한 곳이었다. 또한 그의 삼촌 ‘앤드류왕자’도 1982년 영국과 아르헨티나 사이의 전쟁인 포클랜드 전쟁에 참여한 것으로 유명하다.

유한양행과 학교재단 유한재단을 창립한 유일한(1895~1971)박사도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참 기업인이자 교육자였다. 그는 제약기업 유한양행을 우량기업으로 성장시켰고 기업의 수익을 여러 형태로 직원들과 나누었으며(직원지주제) 기술인 양성을 위해 유한공고를 창립한다. 유일한은 가족과 자식에게 유산을 거의 남기지 않았다. 유한양행주식 14만 941주를 전부 유한재단에 기증하고 아들과 딸에게는 대학교육을 시켰으니 이제부터는 자신의 길을 개척하라고 유언한 것으로 유명하다.

성경에도 오블리스 노블리제를 실천한 인물들이 소개되고 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구약성경 ‘룻기’에 나오는 ‘보아스’라는 인물이다. 남편을 잃은 룻은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을 주우며 남편과 아들을 모두 잃은 시어머니 나오미를 봉양한다. 그 사실을 안 보아스는 사환들에게 곡식을 거둘때 조금씩 남겨 두어 룻이 줍게 하고 그녀를 꾸짖지 말라고 당부를 한다. “룻이 밭에서 저녁까지 줍고 그 주운 것을 터니 보리가 한 에바쯤 되는지라”(룻 2:17)

먹고 사는 것이 해결된 지금은 어떤 개인과 집단이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될 수 있는지를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다. 또한 다른 이들에게 “그런 삶을 사세요”라고 강요할 수도 없다. 그것은 인식의 차이와 삶의 가치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자신은 ‘존귀한 자’라는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더 나아가 세상으로부터 빚진 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그 사회는 성숙한 사회이다. 가정이나 직장 안에서 혹은 공동체 속에서 남을 배려하고 솔선수범하고  웃는 자와 함께 기뻐하고 우는 자를 붙들고 함께 슬퍼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이 시대에 뉴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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