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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주일특집/ 성도 위해 목숨 내놓은 참 목자 서두성 목사
성도 지키다 공산당에 죽임 당해
31세 불꽃같은 생 마감
백암 지역 최초로 중학교 설립
청년들에게 기독가치관 심어
[1105호] 2017년 09월 20일 (수) 15:40:35 김가은 기자 ggk2046@gmail.com
   

순교자 서두성 목사

민족의 구원을 위해 복음 전파에 매진하며 민족 계몽에 앞장섰던 순교자 서두성 목사(백암교회)는 경기도 용인 백암지역의 대표 지도자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그는 독립 이후 격변의 나라를 위해 선지자 역할을 하며, 다음세대 계몽을 위해 고군분투하다 마침내 성도를 살리기 위해 목숨마저 내놓았다. 순교자주일을 맞아 성도들을 위해 죽음을 택한 서두성 목사의 삶을 다시 조명했다.

뜨거운 열정의 복음 전도자
서두성 목사의 순교 사건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같은 시기 납북되거나 순교한 다른 목회자들에 비해 남아 있는 기록이 적은 까닭이다. 이호균 목사가 백암교회에 부임하면서 서 목사의 순교 사건이 본격적으로 재조명됐다.

1920년 2월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면에서 태어난 서두성 목사는 1944년 초, 경성신학교(현 서울신학대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상경했다.

1948년 경성신학교를 졸업한 서두성은 경기도 용인시 백암교회 담임전도사로 부임했고, 이듬해 목사 안수를 받은 후 구령의 열정을 불태우며 부흥을 이끌었다. 그는 성결교회 목사답게 부흥회를 뜨겁게 인도해 성도들의 성령체험을 이끌었다. 서 목사에 대한 소문이 널리 퍼져 여러 곳에서 초청을 받아 원삼과 영곡마을에서 천막집회를, 백봉마을에서 가정교회 집회를 인도하기도 했다. 부흥회에 참여한 이들이 뜨거운 성령의 불을 받아 원삼과 백봉에서 성결교회를 창립하는 결실도 맺었다.

민족 계몽에 앞장선 교육자
서두성 목사의 열정은 복음전파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그는 시대적 상황과 사회적 현실에도 큰 관심을 기울였다. 독립 이후 혼란스럽던 시절, 서 목사는 시국강연회를 열고 사람들이 공산주의에 빠지지 않고 건전한 사회정치관을 가질 수 있도록 계몽에 앞장섰다. 또한 서 목사는 1949년 기독청년들을 중심으로 대한청년단을 조직해 청년들에게 기독교적 시국관을 심어주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특히 서 목사는 다음 세대 교육사업에 매진했다. 당시 경기도 용인 백암지역은 중학교가 하나도 없어 진학하려면 타지역으로 유학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에 서 목사는 교회사택을 임시교실로 개조해 외사고등공민학교를 설립했다. 외사고등공민학교는 오늘날 백암중학교의 전신이다.

목숨까지 버리며 ‘아가페’ 삶 실천
   

서두성 목사 순교기념비

1950년 6.25 전쟁발발 이후 7월 백암 지역도 공산군에 점령됐다. 목사들은 더욱 고초를 당한다는 소문이 퍼지자 성도들과 백암경찰서 지서장 등 지인들은 서 목사에게 피신할 것을 간곡하게 청했다. 그러나 서 목사는 “성직자는 마지막까지 남아서 하나님의 전을 사수해야 한다”고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오히려 서 목사는 마을에 남은 성도들을 독려해 함께 예배하며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했다. 그러던 중, 몇몇 성도들이 공산군에게 발각되어 끌려가는 일이 벌어졌다.

이 소식을 들은 서두성 목사는 지체 없이 내무서를 찾아가 성도들을 석방해달라고 요청하며 성도들 대신 옥살이를 자청했다. 서 목사의 희생으로 성도들은 모두 풀려날 수 있었다.

일주일 후 풀려난 서두성 목사에게 성도들은 피신할 것을 더욱 간곡하게 청했다. 하지만 그는 “만약 내가 없어지면 죄 없는 많은 교인들이 다시 체포되어 어려움을 당하게 될 것이다”라며 또 다시 거절했다. 결국 며칠 후 다시 잡혀가 옥에 갇힌 서 목사는 공산군이 퇴각할 때 북으로 끌려가다 수원 인근 야산에서 무참하게 순교 당했다.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목사’로서의 신앙과 성도들을 지킨 것이다.

‘한국성결교회 100년사’ 집필위원 허명섭 목사는 “자신의 생명보다 성도를 더 생각한 서두성 목사는 ‘아비의 심정을 가진 목회자’였다”며 “그가 보여준 아가페적 사랑을 본받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순교, 한 알의 밀알되다
   

현재 백암교회 전경

서두성 목사의 순교는 후대에 숭고한 신앙유산으로 이어져 오고 있으며, 남달랐던 교육사랑은 현재까지도 백암교회를 통해 큰 열매를 맺고 있다.

특히 백암교회는 장학증서에 서두성 목사의 순교 정신과 백암중학교를 설립한 그의 교육열정 등을 자세히 새겨넣어 학생들에게 그의 고결한 정신을 알리고 있다. 이호균 목사는 “백암교회가 매주 차와 점심 대접으로 지역을 섬기고 지역아동센터 운영으로 소외된 아동들을 돌보는 것도 서 목사님의 전도 열정을 따르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서 목사의 신앙은 자녀들을 통해서도 이어지고 있다. 큰아들인 서영호 장로는 청계열린교회에서 충성스럽게 섬기다 은퇴했고 차남 서영철 집사는 시온장로교회를 섬기고 있다. 두 딸 절자·혜자 씨도 미국과 호주에서 교회를 잘 섬기며 신앙의 유산을 이어가고 있다.

이렇듯 성결한 순교자 서두성 목사의 순교가 뿌린 씨앗은 지금도 복음을 전하고 다음 세대를 길러내는 등 현재진행형으로 아름다운 꽃과 열매를 맺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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