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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시론> 공리주의, 종교인의 신(神)인가?
[1103호] 2017년 09월 06일 (수) 15:49:45 이희철 교수(서울신대) webmaster@kehcnews.co.kr

   
        이희철 교수
어느 날 한 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 학생은 교수의 평가기준에 대한 불만을 호소하였다. 그러면서 그 학생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A를 받았습니다. 저는 B를 받았습니다. 다른 학생들도 교수님의 평가 기준에 대하여 불만이 있지만 A를 받았기 때문에 말을 하지 않은 것 뿐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모두 불만이 있지만 왜 A를 받은 학생들은 교수에게 불만을 말하지 않고 B를 받은 학생은 교수에게 불만을 토로하였는가? 불만이 있지만 불만을 표현하여야 할지, 아니면 하지 말아야 할지를 결정하게 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기준이 권리인가, 아니면 이익인가? 권리를 지키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이익을 예상하기 때문인가?

공리주의(utilitarianism)가 만연한 자본주의사회에서는 권리보다 이익을 우선시한다. 이익을 위해 권리를 포기할 수 있다. A등급을 받는 이익이 있다면 학생들은 교수에게 불만을 호소하는 권리를 포기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 안에 만연되어 있는 공리주의가 개인의 일상생활에서 표현되고 있음을 알려주는 사례다.

개인의 쾌락과 사적인 이익을 위해서라면 인권이나 도덕을 중시하지 않는 태도이다. 돈과 권력을 얻을 수 있으면 도덕적 양심과 권리는 포기할 수 있는 사회적 풍습이 한국사회에 만연하다.

일상에 스며든 공리주의는 당연히 정치와 사회시스템 속에도 은밀하게 힘을 발휘하고 있다. 공리주의가 만연한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 그 사회를 운영하는 정치인들도 매우 공리주의적일 수 있다. 세월호 사건, 최순실의 국정농단, 북핵에 대한 여야논박, 공기업 청탁입사, MBC·KBS 사태, 국정원 민간 댓글팀 사건 등이 권리와 도덕적 양심보다는 돈과 권력의 사적 이익이 보이지 않는 기준이 된 결과가 아닌가 싶다.

사적인 이익을 위하여 법과 권리를 포기하는 사회적 패턴은 정치적 주체나 경제적 주체들이 윤리적 책임을 피하여 빠져나갈 구멍만 찾게 만든다. 이를 일컬어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라고 한다. 경제학에서는 위험을 감수하는 대가를 다른 쪽으로 떠넘길 수 있다는 이유로 더 큰 위험을 감수하려는 충동을 도덕적 해이라고 부른다. 눈앞에 사적인 이익이 보이기에 다가올 위험을 가볍게 여기거나 다가올 세대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태도이다.

이어령 씨가 오래 전에 쓴 ‘식물인간’이라는 글을 간단히 소개한다. “사람들은 모두들 괜찮다고 한다. 비오는 날엔 우산이 있으니까 괜찮다고 한다. 잠이 오지 않는 날이면 술 한 잔이 있으니까 수면제가 있으니까 괜찮다고 한다. (중략) 도시의 어스름한 골목길에서 속옷을 벗어야 하는 계집애들이 눈물을 흘리고 또 흘려도, 나에겐 약혼자가 있으니까 괜찮다고 한다. 온실을 가진 삶은 근심하지 않는다, 겨울잠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가로수의 가지들을. (중략) 모두들 괜찮다고들 한다. 죽음까지도 보험에 들었으니 괜찮다고 한다.(중략) 그런데도 누군가가 울고 있다. 해가 뜨는데도, 바람이 부는데도, 우산이 있고, 술이 있고, 수면제가 있고, 봄이 오고 있는데도 누군가가 지금 울고 있다.” 

사적인 이익이 눈앞에 있으니까, 아직 안전하니까, 우리는 ‘괜찮다고’ 말하고 있지는 않는가! 기독교를 포함한 종교단체들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눈에 보이는 사적인 이익을 위해 주님이 주신 거룩한 책임과 권리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예수님이 긍휼이 여기고 대변하려고 했던 약한 자, 병든 자, 가난한 자, 소외된 자들이 우리 주위에 여전히 있다. 기독교는 눈에 보이는 사적인 이익을 위해 거룩한 사명과 권리를 포기하는 우매한 짓을 하지 말아야 한다. 우매한 짓은 하나님보다 공리주의를 숭배하는 우상숭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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