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티라우 하십시오

이성훈 목사
대중에게 비교적 잘 알려진 익숙한 이름의 거물급 경제 인사를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특별한 내용이 아닌 일상적인 내용의 대화였음에도 그에게서 동물적 감각의 직관력이 느껴졌습니다. 아마도 치열한 기업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자연스럽게 터득한 생존 기술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출애굽 당시 뒤에서는 애굽 군대가 쫓아오고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혀 있는 상황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심히 두려워 하였다’(히.이르우 메오드, 출 14:10)고 말씀합니다. 어떻게 보면 그들의 두려움은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비참하게 온 가족이 떼죽음을 당해야 하는 처지에 ‘심히 두려워하지’ (히.이르우 메오드, 출 14:10)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런 상황 속에서 모세의 태도가 무척 흥미롭습니다. 그의 태도에는 상황에 대한 절박함이나 당황함을 전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백성들을 향하여 『..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히.알 티라우)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출 14:13)고 말씀합니다.

사실 백성들이 자신을 향해 “우리를 애굽에서 애굽 사람을 섬기도록 그냥 놔두지 왜 우리를 광야에서 죽게 만드느냐”며 비난하는 상황 속에서 모세의 어조는 매우 강하고 단호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두려워말라’고 번역한 히브리어의 ‘알 티라우’(출 14:13)라는 말에는 다급한 감정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상황을 즐기는 여유마저 느껴질 정도입니다.

만일 모세가 절박한 심정으로 이 말을 하였다면 그는 ‘알 티라우’(출 14:13)보다 ‘로 티라우’라는 말을 사용했어야 했습니다. ‘알 티라우’와 ‘로 티라우’ 모두 동일하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번역이 가능합니다만, ‘로 티라우’는 ‘알 티라우’보다 훨씬 더 강한 어조를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알 티라우’는 ‘로 티라우’보다 훨씬 부드러우면서도 여유로운 감정을 담아냅니다. 물론 모세가 이 말을 하면서 여유로운 웃음까지 보였겠습니까마는 ‘알 티라우’ (‘두려워하지 말라’)라고 하는 말 속에는 놀라우리만큼 여유와 자신감이 묻어져 있습니다. 수십 년 전의 모세와는 전혀 다른 태도의 모습입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바다의 적조를 해결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있습니다. 바다에 아무리 황토흙을 넣어도 해결되지 않는 지독한 적조 현상은 강력한 태풍으로 간단히 해결되는 법입니다. 과거에 모세에게도 불신앙이라고 하는 적조 현상이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는 바로와의 대결이라고 하는 엄청난 태풍을 통하여 불신앙이라고 하는 적조현상은 말끔하게 해결되었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모세는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배우게 되었고 이제야 진정한 리더의 모습을 갖출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내게 태풍이 엄습하면 우리는 놀라거나 당황해 합니다. 그러나 좌절과 낙망이 나를 지배하도록 놔두지는 마십시오. 그렇게 따진다면 출애굽 당시의 상황은 모세를 낙담시키고도 남을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결코 이론적이지 않습니다. 단지 머리로만 아는 지식은 더더욱 아닙니다. 믿음은 삶의 실재입니다. 이 세상을 이기게 하는 유일한 힘입니다. 가장 위급할 때에 ‘로 티라우’가 아닌 ‘알 티라우’고 말할 수 있는 영적 통찰력을 겸비하십시오. 위대한 믿음의 소유자가 되십시오. 이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