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32년 11월 16일, 스페인의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의 잉카인 대학살은 가톨릭 수사 비센테 데 발베르데를 앞장세워 시작되었다. 발베르데는 한 손에 십자가 다른 손에 성경을 들고 잉카제국의 황제 아타우알파에게로 나갔다. 그는 말했다. “하나님과 기독교인들을 대신하여 그대가 우리와 벗이 되기를 청하는 바,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또한 그대에게도 유익하기 때문이요.”(제레드 다이아몬드·‘총,균,쇠’)

▨… 수사가 신호를 보내자 스페인군은 총을 쏘며 돌격했다. 그것은 전투가 아니라 일방적인 대학살이었다. 무장을 하지 않은 잉카인들은 전투 의사가 없었고 스페인 군사들은 그런 잉카인들을 가차없이 베어버렸다. 그 한 번의 만남에서 스페인군은 7,000명 이상의 잉카인을 죽였고 아타우알파 황제를 생포했다. 그것으로 잉카제국은 멸망되었다.

▨… “나는 가톨릭교도로 개종함으로써 방데의 반란을 진압할 수 있었습니다. 또 회교도가 됨으로써 이집트에 확고히 자리 잡을 수 있었으며, 교황권 지상주의자가 됨으로써 이탈리아 성직자들도 나를 지지하게 되었지요. 만일 유대민족을 다스려야 한다면 나는 솔로몬 왕의 신전을 재건할 것입니다.”(귀스타브 르 봉·‘군중심리’) 이것은 나폴레옹이 프랑스 국무회의에서 행한 연설의 일부이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선 종교이용도 가차없음을 보여준 살아있는 예이다.

▨… 자신의 목적 때문에 신앙과 하나님을 팔았던 사람들이 피사로나 나폴레옹 뿐일까? 히틀러도 ‘나의 투쟁’에서 자신이 그리스도교의 전사라고 자처했었다. 오늘에도 많은 이들이 교회와 신앙을 앞세우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려한다. 이런 모습의 한국 교회는 십자가의 예수님을 스스로 조롱하고 있다. 이 조롱을 통해 한국교회는 예수의 현존을 제대로 증언하고 있는 것이라고 차라리 자위라도 해야 할까.

▨… 교단은 법적 대응을 위해 변호사를 선임하고, 수해를 당한 교회를 위해 긴급구호도 나서고, 문을 닫았던 성결원도 재개원 해야 하고 종교인 과세 대처방안도 세워야 한다. 교단발전심의위원회까지 만들었으니 교단지도부는 일에 치일 각오는 단단히 했을 것이다. 그 일들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단과 하나님을 이용하려는 이들의 간지만큼은 단호히 훼파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모인 우리 성결교단에는 그런 이가 단연코 없다고 믿는다. 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성결교회이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