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 줍는 어르신들 섬겨
퀵 서비스로 배달 일 하면서
작아지고 약해지고 소외된 곳
예수사랑 전하는 거리의 천사
야외 예배당 ‘길사람교회’
주일 마다 거리에서 예배 드려

구부정한 허리를 더 구부려 손수레에 폐지를 싣는 노인들. 동네 골목길에서 쉽게 보고 지나칠 수 있는 장면을 예상해 목사(길사람교회)는 예사롭게 보지 않았다. 몸집 보다 훨씬 큰 리어카를 끄는 노인들의 모습에서 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님이 보였던 것이다. 그는 고민 끝에 지난해 거리로 나섰다. 폐지줍는 어르신들에게 여름엔 시원한 생수 한 병을 건네고, 겨울엔 따뜻한 커피를 대접했다. 어르신들의 안전을 위해 안전조끼도 선물했다. “하나님께 기도하세요”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이렇게 길 위에 ‘길사람교회’가 세워졌다. 건물도 소속된 성도도 없지만 소외된 모든 곳이 길사람교회의 교구이고 작고 약한 모든 이가 길사람교회의 성도이다. 오토바이를 타고 복음을 실어 나르는 길 위의 목자, 예상해 목사를 만났다.

“안녕하세요? 하나님이 주시는 물입니다. 힘이 들면 하나님께 기도하세요!”

살인적인 폭염 속에서 어디선가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난 예 목사는 땡볕 아래서 폐지를 줍는 할머니에게 다가가 시원한 얼음물과 에너지 드링크를 손에 쥐어주었다. 할머니의 얼굴에 금세 미소가 번졌다. 폐지 1kg을 모아야 100원을 겨우 받는 할머니에게 800원 짜리 생수 한 병은 ‘복음’이나 마찬가지였다.

“목사가 왜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물을 주고 다니냐”고 할머니가 묻자 예 목사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저는 전할 뿐”이라고 말하고 자리를 떴다.

퀵서비스 일하며 폐지 줍는 이들 섬겨 
사실 예상해 목사는 평일에는 오토바이 퀵서비스 일을 한다. 사역과 가족의 생계를 위해 병행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선택한 것이 바로 오토바이 배달이다. 일을 하면서도 거리에서 고물을 줍는 어르신을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 목사의 오토바이에는 얼음물과 에너지 드링크, 간식 등이 항상 실려 있다. 골목길에서 어르신을 만날 때 마다 바로 전달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하는 것이다.

아침 9시부터 저녁 밤 9시까지, 강남 전역이 그의 사역지다. 배달을 하면서도 폐지를 줍는 거리의 천사들을 만나면 얼른 오토바이를 세우고 생수 한 병이라도 꼭 전해주고 떠난다. 이제는 예상해 목사가 나타나는 시간을 특별히 기다리는 이들도 있다. 그렇게 차차 마음을 열어가는 이들을 위해 잠시 오토바이에서 내려 축복 기도도 해준다. 물 한 병 사먹기 힘든 노인들은 예 목사의 작은 선행이 사막에서 만나는 오아시스와 같다고 말한다. 리어카에 폐지를 가득 실은 채 예 목사의 두 손을 잡고 기도한 할머니는 “감사합니다. 너무 감사합니다”인사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물론 물 한 병조차 거절하는 어르신도 있지만 목사라고 소개하면 사람들이 경계를 풀기도 한다.

토요일엔 고물상 오가며 사랑 전해
예 목사의 선물은 물뿐만 아니다. 어르신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양말, 장갑, 안전 조끼도 준비해서 나누어준다. 리어카에 안전 야광 스티커를 붙여 주기도 한다.

예 목사의 사역은 주말이 가장 바쁘다. 토요일이면 휴일 없이 일하는 노인들을 찾아 양재동에 있는 고물상 4곳을 오간다. 이들에게 지퍼백에 홍삼쥬스, 빵, 사탕, 커피, 귤 등 다양한 먹거리를 담아 나눠준다. 토요일에 전하는 전도물품에는 ‘길사람교회 예상해 목사’라고 쓰인 스티커가 붙어 있다. 지퍼백에 간식을 담는 이유는 어르신들이 지퍼백을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배려다.

거리의 어르신들은 어떻게라도 보답을 하고 싶어 하지만 예 목사는 그저 “‘하나님’에게 감사하라”고 강조, 또 강조한다.

“누군가로부터 지속적인 사랑을 받고, 필요를 공급 받다보면 언젠가 ‘아, 내가 관심을 받고 있구나’라고 생각이 되겠지요. 나중에 한 번이라도 복음에 귀를 기울이시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인생 광야’서 복음을 살아내는 삶
무엇이 예 목사를 이렇게 평범하지 않은 사역으로 이끌었을까? 예 목사가 서울신대 신대원을 다니며 전도사로 사역 하던 중 집안 형편이 크게 어려워졌다. 일흔이 넘은 노모도 모실 수 없는 상황이 돼 사역을 그만두고 닥치는 대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오토바이 배달, 공사장 인부 등 거친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노숙을 한 적도 있다. 이런 ‘광야’ 생활은 6년이나 이어졌다. ‘도대체 나는 왜 이렇게 밖에 살 수 없는가? 하나님이 언제까지 나를 내버려두실까?’ 내면의 고통이 컸다.

그렇게 6년의 시련을 겪은 후 그는 우연한 기회에 다시 교회 사역에 복귀할 수 있게 되었다. 이때 운명처럼 만난 교회가 서울 동작구 사당동에 있는 길벗교회다. 서울신대 김희성 명예교수가 노숙인들을 위해 개척한 교회에서 그는 노숙인들과 동고동락했다. 이때 예 목사의 목회관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전에는 사람들을 많이 데려오는 것이 목회의 목표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사역을 하면 할수록 사람을 진정으로 움직이는 것은 목회자가 삶으로 보여주는 진정성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이때부터 하나님 나라를 지식이 아닌 실제 삶으로 보여주기로 결심한 예 목사는 독립 사역을 준비했다. 기도하며 인도하심을 구하자 하나님은 예 목사의 눈에 폐지 줍는 어르신들만 보이게 해주셨다.

“당시 제 눈에는 폐지 줍는 어르신들만 클로즈업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인생의 짐이란 짐은 모두 수레에 싣고 끌고 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아, 저 분들을 섬겨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지요.” 

그렇게 응답을 받고, 지난해 가을부터 오토바이 전도사역을 시작했다. 광야 시절 6년 동안 지겹도록 타서 쳐다보기도 싫던 오토바이가 사역의 귀한 도구가 되었다. 예 목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고 고백했다.

폐지 줍는 이들에겐 생수가 복음
예 목사가 거리사역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역은 주일 길거리 예배다. 아직 형편이 안 돼 교회 개척은 하지 못했지만 목사라면 교회가 없어도 사역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간판도 공간도 없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이미 교회가 있다. 바로 ‘길사람교회’다. 길에서 만나는 사람 모두가 예 목사의 전도 대상자요 성도이고, 예상해 목사 자체가 길에 서서 하나님을 전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다.

“교회를 개척해서 100명을 모으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길에 나가면 하루에도 100명 이상 을 만날 수 있어요. 그래서 길에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실천하고 있습니다.”

예 목사는 매 주일 오후 3시에서 5시까지 지하철 3호선 양재역 근방 공터에서 기타치고 찬양하며 말씀을 전한다. 듣는 이가 없어도 힘 있게 선포한다. 마침 그 시간에 양재역에서 통근버스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근로자들이 있다. 예상해 목사는 “고정 성도들이 있는 셈 아니냐”며 웃었다.

예 목사는 때론 외롭고 힘든 이 사역을 앞으로도 계속할 생각이다.
“희생을 동반하지 않는 헌신은 위선으로 빠지기 쉬운 것 같습니다. 이 사역을 통해 전도 열매까지 제가 꼭 거둬야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역할은 다른 교회, 다른 목회자여도 괜찮습니다. 우린 하나님 사역 안에서 모두 한 팀이니까요.”

비록 예배당도 없고 성도도 한 명 없지만 그는 복음의 생수를 전하는 목회자다. 모든 길 위를 복음으로 수놓는 천사 같은 목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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