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에 오뎃이라는 선지자가 있었다. 그의 출생과 성장 배경에 대해 알려진 내용이 없다. 다만 성경은 사마리아에 ‘여호와의 선지자’가 있었다고만 기록한다. 오뎃에 대한 이야기는 역대기의 기록이 유일하다.(대하28:8~15)

기원전 730년 무렵, 남쪽 유다 나라는 아하스 임금이 다스리고 있었다. 그런데 아하스 임금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지 않았다. 바알의 우상을 부어 만들고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 분향하는가 하면 산당과 푸른 나무 아래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했다. 하나님은 분노하셨고 아람과 북이스라엘로 유다를 공격하게 하셨다.
아람 군대는 예루살렘을 침공하여 많은 이들을 다메섹으로 끌고 갔다.

이어 북이스라엘 군대 역시 유다에서 하루 동안에 용사 12만 명을 죽였다. 그리고 유다의 여인들과 아이들 20만 명을 사로잡았고 재물을 노략하여 사마리아로 가져갔다. 이 때 선지자 오뎃이 등장한다. 오뎃은 사마리아로 돌아오는 군대를 가로막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다가 범죄하여 하나님이 진노하셨기에 이긴 것이며 북이스라엘 역시 하나님께 범죄한 것이 많으니 유다 포로들을 풀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자리에 에브라임의 우두머리들이 있었다. 아사랴, 베레갸, 여히스기야, 아마사라는 이름의 네 명의 우두머리들이 오뎃의 말에 힘을 실었다. “너희는 이 포로를 이리로 끌어들이지 못하리라. 너희가 행하는 일이 우리를 여호와께 허물이 있게 함이니 우리의 죄와 허물을 더하게 함이로다. 우리의 허물이 이미 커서 진노하심이 이스라엘에게 임박하였느니라.”(대하28:13)

결국 무기를 가진 사람들이 고개를 숙였다. 옷을 가져다가 벗은 자들에게 입히고 신을 신기고, 포로들을 먹이고 마시게 하며 기름을 가지고 와 상처들을 치료해 주었다. 그리고 약한 자들은 나귀에 태우고 유다 포로들을 인솔하여 남북의 경계선에 있던 여리고까지 데리고 가서 유다의 형제들에게 넘겨주었다.

사마리아에서 여리고까지는 대략 60㎞ 정도이다. 이틀을 꼬박 걸어야 하는 거리이다. 그 길을 아녀자와 아이들 20만 명이 포로로 끌려갔다가 자유의 몸으로 돌아왔다.

굶주리고 벌거벗긴 채 피를 흘리며 끌려갔는데 돌아올 때는 먹고 마시고 치유되고 회복이 되었다. 남과 북의 물고 물리는 적대적인 관계가 평화와 상생(相生)의 기쁨으로 변화된 모습이다. 아녀자와 아이들 20만 명이 걷는 모습은 어떠했을까? 그리고 그들은 북쪽 군사들과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았을까? 서로를 보는 그들의 눈빛은 얼마나 따뜻했을까?

남북 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미사일을 쏘아대고 군사훈련을 반복하고 있다. 정치권도 바람 잘 날이 없다. 협치를 말하지만 여야 모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갈팡질팡하고 있는 형국이다. 아니 세상은 그렇다 치고 교단과 교회 안에서도 많은 이들이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물론 나름대로 이유도 있고 명분도 있을 것이다. 모두들 같은 성경을 읽고 한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분들인데 여기저기서 다투고 있는 모습에 속이 편치 않다.

예수님은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둘을 하나로 만드셨다.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엡2:15~16) 선지자 오뎃이 그리워진다.

우리에게도 오뎃처럼 시대의 흐름을 읽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줄 아는 선지자가 있었으면 좋겠다. 에브라임 우두머리들도 그립다. 오뎃이 최고지도자라면 이들은 그 참모이며 동역자들이다. 최고지도자와 그 참모들이 선한 양심으로 그 힘을 합친다면 나라도 교회도 모두모두 기쁨에 넘쳐 춤을 추게 될 것이다.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