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교회 개척부터 중단없는 선교 … 수정처럼 빛나다 - 한국성결신문 한국성결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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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교회 개척부터 중단없는 선교 … 수정처럼 빛나다
월세 못 내고 사례비 못 줘도
빚으로 문닫을 지경에도
선교만큼은 멈추지 않아
40년간 선교사 38가정 파송
지교회 20·해외교회 20곳 설립
일반 재정 50% 이상 선교비로
개교회로서 첫 대북 접촉
[1095호] 2017년 06월 28일 (수) 15:39:44 황승영 기자 windvoic@hanmail.net
   

“전도사님,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전도사님 생활비도 못 드리는 형편인데요. 우리 문제부터 해결하고 천천히 합시다.”

“집사님, 왜 큰 교회가 체면치레 선교 밖에 못하는 줄 아십니까? 처음부터 안 해서 그런 겁니다. 우리도 월세를 전세로 바꾸고, 땅을 사서 교회당을 세우면 우리 교회만을 위한 담을 점점 높이 쌓을 겁니다. 그리고는 우리 스스로가 그 담을 허물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앞일을 위해 처음부터 합시다.”

교회 형편이 나아지면 천천히 선교를 하자고 하는 쪽은 수정교회 홍순모 집사이고, 처음부터 선교를 해야 한다고 설득한 사람은 조일래 전도사(당시 서울신학대학원 1차 재학 중)였다. 개척 초기 교회 재정이 넉넉할 리 만무했다. 사례비를 제대로 받지 못해 조 전도사 가정은 끼니를 거르는 일이 다반사였다. 이은자 사모는 너무 굶어 악성 빈혈에 시달렸고, 둘째 아이에게 줄 젖이 안 나와 보리차를 먹여야 했었다. 그런데도 조 전도사는 “선교를 당장 시작하자”고 고집을 피웠다. 결국 창립 첫해 6월 28일 마침내 선교예배를 드리고, 현 총회장인 신상범 목사가 시무하던 강원도 평창 거문교회에 첫 선교비를 보냈다. 수정교회 선교역사의 장이 열린 것이다. 처음이 어려웠지 점차 선교비를 보내는 교회가 늘었다. 전 총회장 여성삼 목사가 사역하고 있던 김천 태촌교회도 수정교회의 선교비 지원을 받았었다.

중단 없는 선교, 열방의 빛이 되다
이렇게 개척 첫해부터 시작된 수정교회의 선교는 멈추지 않았다. 월세와 교역자 사례비를 제대로 주지 못했을 때조차 선교를 거르거나 미룬 적이 없다. 교회당 확장 등으로 재정적 어려움에 처했을 때도 교역자 사례비를 줄이면 줄였지 선교비는 절대 줄이지 않았다. IMF 구제금융의 한파 속에서도 선교비 만큼은 손대지 않았고, 불로동 성전 건축 때에도 선교 열정은 결코 식지 않았다. 

물론 고비도 많았다. 1986년 대림동에 첫 교회당을 신축한 후였다. 선교열정은 마르지 않았지만 돈은 쉽게 말랐다. 사채를 끌어다 교회당을 신축한 후 높은 이자 때문에 부채가 계속 늘어 재정이 갈수록 악화되었다.

급기야 교회의 기둥격인 집사들이 “이러다가 교회가 떠내려간다”며 “선교는 중단하고 빚부터 먼저 갚자”고 압박했다. 그러나 조 목사는 “선교를 계속하면 하나님이 도우실 것이니 선교를 중단해서는 안 된다”고 물러서지 않았다. 그 결과 여러 사람이 위원장 등 중요 직책 맡는 것을 거부했다. 몇몇은 교회를 떠났다. 그래도 수정교회의 선교는 중단되지 않았다.

세계로 뻗는 선교 울타리
조일래 목사의 생각은 옳았다. 1987년 가장 혹독한 시련을 겪은 후 장년 출석이 38%가 증가했다. 재정 수입도 약 30% 증가해 교회가 더욱 든든히 서 갔다. 그리고 1989년 수정교회 선교의 빛이 드디어 세계로 뻗어나갔다.

첫 해외 선교사(김규식 선교사)를 스페인에 파송한 것이다. 이어 첫 지교회인 죽림교회 창립 및 헌당예배를 드렸다. 그 다음 해에도 제2 지교회로 증평수정교회를 설립하고, 인도와 러시아에 선교사를 파송하는 등 선교의 물꼬가 터지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농어촌과 세계 열방을 향해 선교의 문을 열었던 수정교회는 지금까지 22개국 38가정 70명의 선교사를 파송했다. 해외에 20개 교회를 설립, 건축하고, 국내에도 20개의 지교회를 세웠다. 40년 동안 거의 매년 1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고 1개의 교회를 국내외에 설립한 꼴이다.

이 뿐 아니다. 네팔에 도티 병원과 영재학교를 설립하는 등 해외 곳곳에서 선교와 교육, 의료 사업을 벌였다. 수정선교센터 건립으로 교단 선교사 훈련과 안식년 선교사 안식처 등을 제공하기도 했다.

수정교회의 선교는 퍼주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국내에 있는 100만 명이 넘는 이주민과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선교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방적 도움이 아니라 ‘스스로 돕도록 돕는다’는 원칙을 정하고, 이주민 스스로 자생하는 신앙공동체를 만들었다. 그 결과 부산과 안산 등에 필리핀 예배처가 생겼고, 필리핀으로 돌아간 근로자들이 지교회 7개를 세우는 결실도 맺었다. 올해는 전 세계에 흩어진 이주민들을 선교하고 양육할 훈련센터 수정국제선교센터도 필리핀에 건립했다. 한국에서의 현금·물자 지원뿐만 아니라 필리핀 이주민들이 직접 헌금와 기부로 참여해 ‘함께 이뤄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이렇게 경상비의 절반 이상을 선교비에 지출하고 있는 수정교회는 ‘이웃에 복음을! 농어촌에 선교비를! 온세계에 선교사를!’이란 비전을 40년 째 이어오고 있다.

수정 같은 맑은 마음으로
수정교회는 선교뿐만 아니라 나눔과 봉사 등 지역과 사회선교에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의료 봉사가 대표적이다. 2000년부터 매달 농촌교회 등을 방문해 내과와 한방 등 무료 진료봉사를 벌였다. 이·미용 봉사도 함께 펼쳤다. 의료 봉사의 손길은 국내뿐만 아니라 베트남 등 해외로까지 이어졌다.

대림동 시절에는 지역사회위원회에서 매주 화요일 노숙자 봉사와 희귀난치병 환우 돕기, 어려운 이웃에게 쌀과 생필품 지원, 사랑의 수화교실, 2호선 대림역 화장실 꾸미기와 문서선교, 지역사회 내 환경미화원 초청 위로잔치를 벌이는 등 지역사회에 든든한 사랑의 울타리가 되어 주었다. 2002년 3월에는 장기기증 서약운동을 전개해 성도 599명이 장기기증 서약에 동참하기도 했다.

불로동에서는 동사무소와 함께 구제사업을 벌이고 있다. 또 최근에는 지역 어르신을 위한 다양한 맞춤형 사역도 시작했다. 연예인 봉사단을 초청해 어르신을 위한 은빛축제를 열었고, 노인들에게는 무료 시력검사와 맞춤 안경 나눔도 실시했다. 올해는 노인 여가생활과 평생교육을 위해 노인대학도 설립, 운영하고 있다.    

북한에 남한 교회의 사랑 직접 전해
수정교회는 북한선교에도 눈을 돌렸다. 2002년 북한 어린이에게 분유보내기 운동을 시작으로 대북지원 사업을 교회 차원에서 벌였다.

놀라운 사실은 수정교회는 조선그리스도연맹과 직접 교류했다는 점이다. 조그련과 팩스로 직접 연락하던 수정교회는 2008년과 2009년 개성과 북경에서 조그련 대표와 직접 만나기도 했다. 당시 북측에서는 조그련 오경우 서기장 등 4명이 나왔고, 수정교회에서는 조일래 목사 조동제 고영만 장로 등이 참석했다.

북측에서는 평양 봉수대교회 앞 대동강 교량 건설 지원 등을 제안했고, 수정교회는 인적·문화적 교류를 요청했지만 이후 연락이 두절 돼 더 이상의 진전은 없었다. 하지만 이 두 차례 회담은 북한 조선그리스도교연맹과 남한의 단일 교회 차원에서의 첫 회담이라는 사실을 통일부와 조그련 측이 확인해 주었다.

수정교회는 이후 2010년 밀가루 19톤을 북한으로 보내는 등 대북사업을 이어갔다. 수정교회는 앞으로도 기회만 된다면 남측교회의 사랑을 북측에 전할 계획이다. 개척부터 오매불망 선교에 전념한 수정교회 40주년은 바로 선교의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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