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형은 목사
사회변동과 역사 흐름에서 결정적인 요인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예측 가능한 것 다른 하나는 예측이 가능하지 않은 것이다. 어떤 가치관에 근거하여 방향을 정하고 정책과 구체적인 방법들을 동원하여 사안을 다루어가는 것이 예측 가능한 요인이다. 반면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사건 때문에 사회 변동이 일어나는 것이 예측 불가능한 경우다. 어느 사회든 이 두 가지 요인이 서로 영향을 끼치며 변동을 경험한다.

사회 변동에는 물론 발전도 있고 퇴보도 있다. 일반적으로 역사가 발전한다고 보는 견해도 많지만 기술의 발전에만 초점을 맞출 때 가능한 얘기다. 사람의 마음과 윤리적 태도, 사람이 사는 자연환경의 보전과 생태계의 상황을 생각하면 역사는 발전하지 않는다. 인류의 존재 환경 전체를 놓고 볼 때 21세기는 지금까지 진행돼온 심각한 퇴보와 앞으로 닥칠지 모르는 전 지구적 재앙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사회 변동과 역사 흐름에 영향을 끼치는 요인 둘 중에서 더 중요하고 결정적인 것은 예측 가능한 요인이다. 가치관과 세계관 그리고 인간관의 문제란 얘기다. 이 면에 연관되는 것이 종교와 사상이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주신 완결된 계시인 성서의 가르침에 근거하여 가치관을 세워가며 살아간다. 예측하지 못하는 일을 역사의 우연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는 운명 또는 숙명이라고 말하는데 기독교 신앙으로 표현하면 섭리다. 이 점은 어차피 인간 영역 밖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범위 안에서 사람이 해야 할 몫이다. 그게 가치관의 문제다.

문재인 정부가 탈 원전 정책을 공식적으로 표방했다. 여기에 대해 여러 가지 각도로 사회적인 논의와 지혜를 모아야 한다. 전력과 에너지 공급이라는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서 정부의 관계 부처와 전문가들이 대책을 세워 진행할 것이다. 전기료가 인상될 수도 있다. 우리 사회가 중장기적으로 사람 살기 좋은 세상이 되어야 한다는 명분을 갖고 설득할 일도 있을 것이다.

세계적으로 원전 해체 산업 시장에서 우리나라가 얻을 수 있는 경제 이익도 구체적으로 계산해야 한다. 원전 해체 경험을 가진 나라가 미국 독일 일본 3개국인데 우리 기술 수준은 이들 선진국의 80% 수준이라고 한다.

에너지 공급, 관련 산업의 전망, 사회적 논의와 공감대 형성 등 여러 각도에서 탈 원전 정책을 검토해야 할 텐데, 기독교의 입장에서는 어떤가. 위에서 말한 예측 가능한 면 곧 가치관과 세계관의 문제를 다뤄야 할 기독교의 시각으로 보면 탈 원전 정책은 크게 환영할 일이다.

창세기 2장에 기록된 창조 세계의 보존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은 기독교가 받들어야 할 가장 중요한 두세 가지 명령 중 하나다. 문명비평가 버질 게오르규는 인류가 머물고 있는 시간이 최후의 시간에서도 1시간이 지난 ‘25시’라고 말했다. 원자력 때문에 발생하는 사고는 그 지역의 시간을 순식간에 종말 이후의 시간으로 옮긴다.

원전은 건립하는 데 7~10년이 걸리지만 해체하는 데는 적어도 15년 이상, 경우에 따라서는 30년이 넘게 걸리기도 한다. 해체가 아니라 사고가 발생하면 그 비용은 계산조차 불가능하다. 1986년 4월 26일 발생한 소련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이제 30년이 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사고 지점의 반경 30㎞까지 금지 구역이다.

세계보건기구(WHO)의 통계에 따르면 체르노빌 원전 사고로 500만 명의 피폭자가 발생했고 300만 명의 어린이가 치료 대상이 되었고 4,000명이 사망했다. 그러나 이는 여러 통계 가운데서 보수적인 계산이다. 뉴욕 사이언스 아카데미에 따르면 1986년~2004년까지 사망자가 100만 명에 이른다.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일본 후쿠시마의 원전 사고로 일본의 안전 신화가 산산조각 났다. 사고에 대한 은폐 축소 등에서 일본도 예외가 아니었다. 후쿠시마 충격은 사실 현재진행형이다. 우리의 먹거리에서도 그렇다. 고리 1호기에서 반경 25㎞만 원을 그려도 울산 시청과 부산 시청 그리고 인구 밀집 지역인 해운대가 포함된다. 반경 30㎞ 안에 340만 명이 산다.

고리 1호기 가동 영구 중지에서 시작되는 탈 원전 사회로 가는 길, 크게 환영할 일이다. 좋은 방향이다. 구체적인 로드맵을 위하여 모두가 지혜를 모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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