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회장 강신찬 목사

교단에서 부평제일교회가 차지하는 비중과 강신찬 목사의 지도력이 증대되면서 1999년 강 목사는 교단총회장에 피선되었다. 총회장 강 목사는 특유의 친화력과 지도력을 발휘하여 예수교대한성결교회와 형제교단으로서 우의를 다지는 초석을 마련했다.

기성과 예성의 연합을 위해 예성총회장 장홍식 목사와 양교단총회장 강단교류를 열고 뜻을 같이 하여 연합운동을 결의하고 이를 위해 위원회를 조직했고 예성총회장을 부흥강사로 초빙하는 등 연합운동에 힘썼다.

한국성결교회연합회가 창립되고 양교단 산하 신학교와의 교류협력, 교회학교 교재 공동 집필, 캘린더 공동제작 등의 협력체제가 이뤄졌다.

총회장으로서의 강 목사는 서울신학대학교 대성전 공사를 마무리했고 철거직전의 만주용정교회를 중국과 협의해 복원하여 교단의 정체성을 학립하고 위상을 높였다. 용정교회는 1923년에 설립된 우리 교단 최초로 설립된 해외교회다.

강 목사는 교파연합사역에도 앞장섰다. 기독교텔레비전 이사를 역임했고, 대한기독교서회 이사장을 역임했다. 1991년 경인신학교전신인 인천신학교를 설립하고 초대학장에 취임해 신학교정상화와 목회후보자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2004년까지 학장으로서 학교를 이끌어갔다. 또 러시아의 모스크바성결신학대학의 이사장과 학장을 역임해 러시아선교의 기틀을 쌓기도 했다.

1984년 그의 학문적 열정과 학교발전에 헌신한 점이 인정되어 캐나다 프로비던스신학교(Providence Theological Seminary)로부터 명예신학박사(Honorary D.D)를 수여받았다. 당시 교단과 모교가 목회학 박사과정을 시작했으나 많은 목회자들이 공부를 하고도 학위를 받을 수 없게 되어 상당한 문제가 되었는데, 캐나다의 프로비던스신학교와 협의하여 강의를 이수하고 학위를 취득할 수 있게 되었다.

강 목사는 모교 서울신학대학교에도 많은 애정을 쏟았다. 총동문회장을 역임했고, 모교이사를 두 번하면서 학교부지 확장과 대성전 건축을 계획하고 건축의 불을 댕겨 총회장 재임 시기에  봉헌식을 했다.

그는 교단 100주년을 위한 교단구조 조정위원회와 100주년 기념위원회를 조직한 후 총회장직을 마감했다. 2003년 제93년차 교단 총회에서는 강 목사에게 특별공로패를 수여했다. 

그는 그가 충성한 부평제일교회를 위해 마지막으로 봉사할 수 있는 길을 찾아 1년을 조기은퇴하여 좋은 후배를 후임자로 세우고 배후에서 교회와 후임자를 위해 기도하며 지내다가 2011년 12월7일 폐질환지병으로 76세를 일기로 소천 되었다.

일평생 폐질환으로 고생하면서도 목회와 선교에 열정적으로 전념했던 그의 천국환송예배는 12월9일 부평제일교회에서 교단장으로 엄수되었다.

40대부터 폐질환으로 각혈하고 산소 호흡기를 달고 살면서도 영적 생동감이 넘치는 목회와 선교에 전념했으며 어려운 사람을 돕는 데는 자신을 아끼지 않는 따뜻한 마음을 소유한 사람이었다.

그의 마지막 가는 길에는 새하얀 눈발이 꽃잎처럼 흩날렸다. 유해는 고향 강릉청솔공원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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