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훈 목사
이른 새벽부터 열심히 운동하며 체력을 단련하는 이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그 때마다 나도 운동해야 하는데 하면서도 항상 결정을 뒤로 미루곤 합니다. 사실 운동을 꾸준히 하는 일이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힘도 들거니와 조금 시간이 지나면 귀챦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운동선수들의 삶은 어떻겠습니까? 그들의 삶은 일반인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힘들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체중 감량을 위한 식단과 식사량의 조절은 물론 수면시간과 규칙적인 생활이 가혹하리만큼 철저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렇게 살아가는 삶의 태도가 그들을 최고의 선수로 만들어 냅니다.  

신앙생활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선수의 게으름이 체중감량에 영향을 미치며, 체중감량 실패는 곧 선수생활 마감으로 이어지듯이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죄를 다스리는 삶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기도훈련과 철저한 헌신이 요구됩니다. 이러한 삶은 당연히 우리를 매우 힘들게 하고 따분하게 합니다. 때로는 포기하고 싶어지게 합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바로에게 가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광야로 나아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겠다고 요구했습니다. 그러자 바로는 그들이 게으르기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리고는 이스라엘 노예들이 만들어야 할 벽돌의 숫자는 동일하게 하되 짚은 스스로 구하라고 더 혹독하게 다룹니다.

이러한 바로의 무리한 요구를 따르지 못하자 감독관들은 히브리 출신 ‘기록원들’(히. 쇼테림 출 5:14)을 때립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출신의 ‘기록원들’(히. 소테림)은 바로에게 나아가 벽돌의 숫자는 그대로 하되 짚을 주지 않은 행위가 부당하다고 항의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자 그들은 모세를 원망하는데 그 말이 우리를 얼마나 힘빠지게 하는지 모릅니다. 그들은 모세와 아론에게 “너희가 우리를 바로의 눈과 그의 신하의 눈에 미운 것이 되게 하고(히. 히브아슈템 에트 레이헤누 베에이네이 파르오 우베에이네이 아바다브) …”(출 5:21)라고 합니다. 이 말을 직역하자면 “바로와 그 신하들의 눈에 냄새가 나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아무런 문제없이 살고 있었는데 모세와 아론으로 인하여 이러한 문제가 생겨났다는 말입니다. 아마 그들은 현재 벌어진 상황의 원인을 모세와 아론에게 돌림으로써 궁극적으로는 그들을 보내신 하나님을 원망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잠재되어 있는 노예근성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와의 백성들이 여호와는 보지 못했습니다. 오직 그들의 관심은 바로의 눈에 나지 않고 오직 생존을 목적으로 삼는 모습 외에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은 전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서서히 죽어가면서도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듯 합니다. 

추어두부라는 음식이 있습니다. 산 미꾸라지를 순두부와 함께 물에 넣어 끓이면 미꾸라지가 덜 뜨거운 두부속에 들어가게 되어 만들어진 음식입니다. 살아가는 게 불편하다고 느껴질 때마다 추어두부가 떠올라 정신이 번쩍 들 때가 있습니다.

우리 역시 상대적으로 차갑게 느껴지는 죄라고 하는 두부 속에 들어가 죄를 짓는 일이 익숙하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방법이 너무 익숙하고 편하다고 느껴질 때마다 추어두부를 떠올리며 죄를 무서워 할 줄 아는 신앙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죄와 싸울 줄 아는 방법을 누구보다도 효과적으로 터득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는 혼란과 타락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꼭 필요한 기도제목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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