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김수영의 ‘풀’ 중에서)

부존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는 필연적으로 다른 나라와의 거래를 통해 경제를 지탱할 수밖에 없는 운명적인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근대화 이전, 자급자족 시대는 나라 밖을 크게 의식하지 않아도 국가가 유지될 수 있었겠지만 대량생산, 대량소비 사회에서는 ‘우리 식’대로만 사는 방법을 찾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문을 걸어 잠그고 50년 이상을 살아 온 북한의 참상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우리 경제의 대외 의존도는 2007년을 기준으로 76.1%에 이른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외환위기 이후 더욱 심화돼 왔습니다. 세계 경제가 호황기를 맞으면 우리 살림도 넉넉해지고, 세계가 불황을 맞으면 개개인의 삶은 고단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시인 김수영이 노래한 ‘풀’은 질긴 생명력을 갖춘 민초들의 삶을 의미한다고 배웠습니다. 그러나 작금의 상황을 보니 세계 시장의 변화에 울고 웃는 대한민국 그 자체가 ‘풀잎의 신세’가 된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을 둘러싼 작금의 상황은 그런 의미에서 비극적입니다. 미국의 금융위기에서 비롯된 글로벌 경기침체는 그 바닥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습니다. 우리 경제를 그나마 떠받쳐오던 수출도 1월에는 무려 32%가 줄었습니다. 근근이 흑자를 유지하던 무역수지도 30억 달러나 적자를 냈습니다. 이런 상황이 몇 개월만 더 지속된다면 외환위기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불황의 쓰나미가 몰아닥칠 것이라는 경고도 들립니다.

더구나 미국은 민주당의 오바마 행정부가 들어선 뒤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노골화하고 있습니다. 미 하원은 최근 8000억 달러 규모의 경기부양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정부 자금이 투입된 건설사업에는 미국산 철강제품만 사용해야 한다'는 이른바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 조항을 부칙에 끼워 넣었습니다. 미국뿐만 아니라 러시아와 인도, 브라질과 인도네시아 등도 비관세 장벽을 높이고 있습니다. 세계 시장이 문턱을 높이면 높일수록 우리 상품을 수출할 공간은 더욱 좁아지고 그 만큼 우리 경제는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지금 ‘바람찬 흐린 저녁, 풀잎들이 발밑까지 누워 있는’ 형국입니다.

그러나 바람이 아무리 거세다할지라도 언젠가는 잦아듭니다. 바람이 멈추면 풀잎은 가장 빨리 일어설 것입니다. 국제통화기금 IMF도 우리 경제는 올해 4% 정도 성장률이 후퇴하겠지만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활력을 회복해 내년에는 4%의 플러스 성장을 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바람이 멈추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세계 경기의 회복에 대비해 정부와 기업은 규모를 효율화하고 연구개발 투자를 통한 기술력 배양에 힘써야 합니다.

그 모든 것에 앞서 반드시 갖춰야 할 것은 내부의 분열을 더 이상 확산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나라 밖에서 살 길을 찾아야 하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내부는 지금 증오와 불신에 근거한 대립과 갈등으로 서로가 상처를 주고받고 있습니다. 외환위기 당시 전 국민이 실천한 ‘금모으기 운동’처럼 위기 앞에서 단결하는 저력을 보여야 할 때입니다. 풀잎처럼 끈끈한 생명력은 모두가 하나로 뭉쳐있을 때 가능하게 됩니다. 지역과 이념과 정파와 세대를 초월한 통합과 조화의 사회 분위기 조성이 어느 때보다 간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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