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작은교회 희망이야기
아이들의 꿈나무 도서관 꿈이 주렁주렁

▲ 경북 예천의 만권당도서관은 동네어린이들의 사랑방이다. 독서를 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컵라면도 끓여 먹고 친구들과 즐겁게 놀 수도 있다. 사진은 박훈 목사가 아이드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모습.

경북 예천에 있는 만권당도서관(관장 박훈 목사)은 예천의 유일한 어린이 도서관이다. 예천 백합교회가 어린이들의 꿈을 키워주기 위해 2015년 문을 열었다. 박훈 목사가 사비를 털어서 예천시내에 있는 미용실로 쓰던 공간을 도서관으로 꾸몄다. 만 원 한 장으로 책 한 권 사기 힘든 요즘 예천에 만권당도서관이 생기면서 책읽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키우는 만권당도서관을 찾았다.

만권당도서관은 예천 읍내의 한 초등학교 담장 너머에 있다. 산뜻한 실내에 서가마다 책들이 깔끔하게 정리돼 있었다. 목사가 관장이라고 해서 종교서적만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도서관 규모는 작아도 도서 구성은 알차다. 3900여 권 중 대부분을 유아·초등생을 위한 책으로 특화했다. 학생들이 솜씨를 뽐낸 그림과 공예품도 질서 있게 배치돼 있다.

도서관에 조금만 머물면 이곳이 얼마나 특별한 곳인지 금새 알 수 있다. 누구나 책을 볼 수 있고, 도서 대출은 기본이다. 책장 넘기는 소리만 들리는 다른 도서관과는 달리 놀 수도 있고, 컵라면도 끓어 먹을 수 있다. 심지어 낮잠까지 잘 수 있다. 그래서 13평 남짓한 작은 도서관은 아이들에게 참새방앗간과 같은 곳이다.


아이들 꿈과 희망 키워주는
소중한 젖줄 ‘만권당도서관’
책나무, 숲이 되고 꿈이 되다

오후 1시부터 아이들이 하나 둘씩 도서관을 찾아왔다. 방과 후 3시가 되자 도서관은 아이들로 가득찼다. 도서관이 생기면서 초등학생들의 동선이 바뀌었다고 한다. 방과후 가장 먼저 들르는 곳이 도서관이 됐다.
김가영 양(초4)은 “책읽기 싫어하는 애들도 이곳에 오면 금방 책을 좋아하게 된다”면서 “양궁 연습만 없으면 도서관에 오래도록 있고 싶다”고 말했다. 김경호 군(초2)은 “집에도 똑같은 책이 있지만 여기서 읽는게 더 재밌다”고 말했다.

언제나 아이들로 시끌벅쩍한 이곳은 엄마가 집을 비울 때는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아이들 안전 지킴이 방’으로도 통한다. ‘아동지킴이 간판’을 경찰서장이 직접 달아줬다. 주민 김봉수 씨(47세)는 “아이들이 책을 읽고 간식도 먹을 수 있어 좋고 관장님이 책 읽어 주니 고맙고 늦게까지 있어도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집에 아무도 없을 때 아이가 보살핌 받으며 책볼 수 있는 곳, 여럿이 책 읽는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독서습관을 길러줄 수 있는 곳으로 자리매김했다.

▲ 만권당도서관 간식 타임. 박훈 목사가 아이들에게 간식을 나눠주고 있다.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한 경험이 있는 박 목사가 아이들의 친구처럼 훈장처럼 아이들과 함께 한 결과이다. 때로는 책 읽어주는 선생님으로, 때로는 간식 만드는 요리사로, 아이들과 신나게 놀아준 덕분에 아이들에게 인기 만점의 도서관이 된 것이다. 지금은 자원봉사자 4명이 매일 15분 씩 동화를 읽어주고 있다. 만권당도서관이 생긴 후 달라진 예천은 책 읽는 마을로 변하고 있다.

박 목사가 작은 도서관을 열게 된데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5년 전 비가 오는 가을날이었다. 아이들이 길에서 컵라면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찬물에 불려서 먹는 것이었다. 아이들에게는 컵라면을 먹을 장소도, 뜨거운 물을 받을 곳도 없었던 것이다. 자녀가 다섯이나 되는 박 목사는 가슴이 아팠다.

이 모습을 목격한 후 박 목사는 작은 도서관 개관을 계획했다. 유치원 교사인 아내와 상의 후 초등학교 앞 미용실로 쓰던 상가를 임대해 페인트도 칠하고 서고도 만들었다. 보증금과 월세는 아내가 부담했다. 지금까지 월세 30만 원과 공과금 10만 원, 간식비 등은 아내의 몫이다. 책을 마련할 돈이 없어서 여기저기서 도서를 기증받았다. 박 목사와 아내와 어머니 셋이서 개관식을 했다. 처음에는 소박하게 출발했다.

그러나 지금은 도서관이 차고 넘친다. 어린이 회원이 130명을 넘었다. 하루 이용객은 적게는 30명, 많게는 70명에 달한다. 토요일에도 도서관을 열 정도다. 방학 중에는 주일을 제외하고 매일 도서관 문을 열고 있다.
무엇보다 만권당도서관은 활기찬 꿈으로 가득하다. 이곳을 찾는 아이들은 20살이 되기 전까지 만권의 책을 읽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다.

▲ 똑볶이 간식 시간을 앞두고.

책을 읽는 아이들은 기특하게 변해갔다. 초등학교 6학년은 이제 시키지 않아도 간식을 준비하고 나누는 일을 하고 있다. 경로당을 방문해 어르신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봉사도 하고 있다. 고교생 8명과 초등학생 8명도 서로 독서의 멘토 멘티가 되어 함께 책을 읽고 토론도 한다.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책으로 묶여진 이들의 우정은 끈끈하다. 또 독서 동아리를 꾸려 인근 초등학교서 독서시간을 따로 배정해 책을 읽어주기도 한다.

저녁에는 우클렐레를 배우러 어머니들이 찾아와 악기 소리로 도서관을 가득 채운다. 도서관을 넘어 지역의 문화공간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박 목사는 다른 초등학교 인근에 또 하나의 어린이도서관 개관을 생각하고 있다. 도서관을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할 계획도 세웠다. 예천 시내 학교마다 한 개 씩 여는 것이 박 목사의 꿈이다.

“하루에 책 몇 권씩 꾸준히 읽으면 10년 뒤엔 만 권 이상 읽은 어린이들이 나오겠죠. 이들 가운데는 우리나라를 이끌 훌륭한 인물도 나올 테구요. 아무튼 우리 이웃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는 문화사랑방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박훈 관장의 꿈은 아이 마냥 매일 한 뼘씩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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