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악하게 하셨다

이성훈 목사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속에는 하나님이 본래 계획하셨고 창조하셨던 것들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슬픔과 아픔, 고통, 미움, 시기, 질투 등은 죄로 인한 부산물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인류의 죄는 세상을 점점 더 왜곡시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더욱 부정하게 만듭니다. 사람들은 본래 계획하셨던 세상과는 많이 왜곡된 세상을 쳐다보며 하나님을 부인합니다.

심지어 “나 예수님 믿어!”라는 사람들조차도 그 고백이 교회 안에서만 국한될 때가 많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세상에서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의 주관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속성은 아주 미세한 부분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출애굽의 소명을 받은 모세에게 하나님은 “내가 ‘하나님이’ 그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즉 그 ‘바로’가 백성을 보내주지 아니하리니”(출 4:2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마치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신 원인 제공자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완악하게 하셨다”는 표현은 전통적인 히브리적 신앙관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실례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주권자라고 하는 히브리적 신앙 표현입니다. 성경을 보면 바로의 완악이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걸림돌이 아닌 오히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나타냈기 때문입니다.

특히 “완악하게 하셨다”라고 번역한 히브리어의 ‘하자크’는 일반형태가 아닌 강조형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행위자의 행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이 악을 행하는 주체라는 의미보다는 바로가 어떠한 생각을 품을지 하나님께서는 이미 속속들이 알고 계셨다는 의미입니다.

바로의 이러한 악한 생각에도 불구하고 그의 행위는 하나님의 위대하신 구원의 계획에 절대 방해가 될 수 없음은 물론 오히려 이스라엘의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드러내는 도구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왜곡되어진 세상 속에서 자칫 우리는 세상이 제멋대로 흘러가고 있다고 착각하며 세상을 두려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히. 레브, 출 4:21)까지도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과 전능하심을 나타내는데 사용된 것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는 우리가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해야 할 이유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대한 믿음이 모세로 하여금 골리앗과 같은 바로 앞에 나가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두려움은 결국 믿음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과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고 주관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정말 믿었다면 그들의 태도는 전혀 달랐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의 주인은 하나님입니다. 사단이 우리를 속인다고 해도 이것은 절대 변하지 않는 진리입니다. 사실 이 세상 처음부터 하나님이 세상의 주관자라고 하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처음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으로부터 많이 왜곡된 세상 속에서 이 사실이 잘 믿어지지 않았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하늘에서만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 분은 세상을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원리대로 이 땅을 다스리고 계시고 또 앞으로도 그렇게 다스려 나가실 것입니다. 이 사실이 진심으로 고백되어진다면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세상을 꿈꾸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모두가 가져야 할 ‘믿음’입니다.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