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맑고 단정하시던 누이, 다정하고 푸근하시던 형수님.

수많은 말들을 입으로 뱉지 않고 미소로 머금어 우리 앞에 누님으로, 형수님으로, 엄마로, 곱고 귀한 아내로 사신 한평생을 어찌 이리 가볍게 거두어 가신단 말입니까. 당신의 발걸음 놓은 마지막 흔적을 적시는 봄비는 당신이 사랑하고 섬기시던 우리 모두의 눈물입니다.

형수님 이름이 현순이시니 그 이름이 아니어도 늘 맑고 고운 향기를 가졌더랬습니다. 꽃 같은 형수님이 때도 아닌 국화꽃 속에 계신 그 황망함을 이제 어찌 합니까. 그 고운 향기의 마지막 자락이라도 기억에 두려고 형수님 가시는 뒷길 배웅했던 발걸음이 1,500분도 넘었다는 건 알고나 가세요.

당신 부군, 헌곤 형 뿐 아니라 목양 한평생 거쳐 오신 동계, 남원, 오산, 새순, 함열교회의 성도님들, 심지어 지나다 들른 나그네 한 사람의 기억에도 형수님은 소박한 미소로 남으시는군요. 저 먼 증도의 순교 신앙 본거지에 형수님이 터 잡으신 까닭도 많은 사람들의 박수와 격려를 덧입으신 사역이셨습니다. 문준경 전도사님이 살아계신 모습으로 기억에 담습니다.

오랜 목회 현장, 선교의 현장에서 분주하신 헌곤 형의 뒷바라지에 빈틈없으셨던 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후덕하신 내조를 잃은 저 남도의 홀아비는 어찌하며, 익은 곡식 알갱이 같은 진성, 일란의 그리움은 어찌하시렵니까.   

순교자 집안, 목회자 집안의 장손 며느리로 시집오셨습니다. 예수님밖에, 복음밖에는 아무 것에도 가치를 부여 하지 않는 그 명문 신앙 가문의 가풍을 앞서 몸에 담으셨습니다. 덕분에 여자의 삶은 정한 기간 저당 잡히신 셈이지요. 그 지난한 삶으로 맺은 수많은 열매들인 우리는 당신 떠난 뒷자리에 앉아 서로를 대견해 하고 있습니다.

진성이는 곧 아빠가 되고, 일란이도 이어 엄마가 되려고 배부른 건 보셨지요. 할머니에 한 발 못 미친 아쉬움도 얼마나 큰지요. 그러나 그들의 할머니가 얼마나 곱고 귀한 여인이었는지는 그들에게 들려줄게요. 아직도 충분히 고우신 소녀로 남은 기억이니까요.

형수님, 당신의 한 평생은 우리 앞에서 뿐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복된 생애이셨습니다. 그리 급히 당신을 불러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에서 그리 발견합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거치는 고통을 그리 감해 주셨으니까요. 아! 어쩌면 복음 한평생의 고난을 보상하시는 아버지의 손길이겠습니다.

형수님은 최고의 지혜인 말씀과 함께 사신 지혜자이셨습니다. 당신은 하늘나라 가는 길을 알리신 소망의 안내자이셨습니다.

시간에 건강과 풍요를 도둑맞아 신음하는 사람들에게 귀 기울였던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셨습니다. 고아와 과부, 외롭고 병든 자들을 돌본 다비다, 그리스도의 손길이셨습니다.

순교, 당신 가문의 소명이신지요? 금지옥엽 따님을 저 먼 땅, 라스팔마스의 선교사로 던지시던 날을 기억합니다. ‘어쩌겠어요. 이 집안의 소명인 것을!’ 미성(美聲) 진성이 성악가의 길에서 사역자로 돌아설 때도 아쉬움과 체념을 거룩한 소명으로 받아들이셨지요.

형수님 가슴에는 언제나 시가 술렁이셨지요? 그 감성으로 많은 사람들이 하늘 눈물로 강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당신 한 평생은 성실한 농부셨습니다. 옥토, 박토 가리지 않고 말씀으로 기경하여 생명을 돋우셨습니다.
가시밭의 백합은 바람 불면 더 향기를 낸다지요. 다시 돌아와 해마다 이 계절이 될 때, 바람이 나무에 걸쳐 다시 봄 향기를 흩날리면 당신이 바람 되어 오셨는지 귀 기울이겠습니다.

부디 눈물도 아픔도 없는 주님의 품에서 편히 쉬소서. 아껴 두었던, 그러나 말하지 않을 수 없는 말씀,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천사장의 호령과 나팔소리 울리는 날, 그곳에서 뵙겠습니다.

2017년 3월 27일, 좌중의 친구들과 더불어 김복철 목사가 눈물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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