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복 장로
5월 9일 개봉될 대선 드라마에서 관객들은 어느 배우에게 손뼉을 많이 칠까. 그 드라마는 보기 싫어도 꼭 봐야 한다. 우리들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영화관이 처음 생겼을 때 학생들의 극장 출입은 엄격히 통제되었다. 가끔 학생들의 단체 입장이 허용되는 영화가 있었다. 기억나는 것은 ‘똘똘이의 모험’이다. 초등학교 학생인 똘똘이와 복남이는 괴한들이 창고에서 쌀을 훔쳐 북한으로 보낸다는 것을 알고 도적단의 소굴로 잠입, 숱한 죽을 고비를 겪으면서 경찰과 함께 일망타진하는 줄거리다. 영화에 열중하면서 오로지 정의를 위해 맹활약하는 주인공에게 손바닥에 불이 나도록 손뼉을 쳤다.

마이클 샌델(Michael J. Sandel) 교수는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정의를 3가지로 압축했다. 공리주의, 자유 지상주의, 공동선과 미덕이다. 그가 강조한 것은 세 번째다. 한국사회에서 요구되는 정의는 무엇일까. 대통령 파면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대통령을 권좌에서 내려놓기만 하면 동토의 정치판이 봄 눈 녹듯할까. 정치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생각이 끝이 없다.

정치는 한 편의 드라마다. 주·조연 배우는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인 또는 정상배요 국민은 관객이다. 배우는 PD의 감독 아래 시나리오대로 연기하고 관객들은 마음 가는 배우의 팬이 된다. 전대미문의 대통령파면 드라마에서는 정의의 주인공 똘똘이가 없었다. 정치인과 정상배들은 똘똘이인양 코스프레를 했다. 그럼에도 손바닥이 터지도록 손뼉을 치는 관객이 있는가 하면 딴 생각을 하다가 옆 사람이 손뼉을 치니까 멋모르게 따라하는 얼뜨기 관객도 있었다. 드라마가 흥미가 없어선지 아예 눈을 감고 잠자는 관객도 보였다.

민주주의의 얼개인 입법, 사법, 행정은 씨 날줄로 거리와 폭을 재어가는 척했지만 제 갈 길만 찾았고 국가의 원수이자 행정 수반인 대통령은 주위 살피기를 게을리했다. 종내에는 여당이면서도 골수 야당 같은 제 식구의 등쌀에 밀리는 꼴이 되고 만 것이다. 공무원에 대한 탄핵은 국회와 정부 간의 겨루기다. 명목상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원이 정부공무원의 위헌·위법 책임을 가리는 과정이다.

대통령의 파면은 이 나라와 국민들에게 큰 상처를 줬다. 평소 국민과는 먼 거리에 있던 헌법재판소가 무소불위의 대통령을 파면시키는 것을 보면서 법치를 아는 국민도 헌재의 권한이 그렇게 큰 줄은 몰랐다. 현실적이면서 지루한 한 편의 정치드라마가 끝났지만 극 중 장면의 곳곳에서 보인 께름칙한 느낌을 아직도 버리지 못하는 관객들도 더러 있다. 정치의 봄을 못 느끼는 이유다.

야권에서는 대통령이 헌재의 판결을 승복하고 사과하는 담화를 발표하라고 채근했다. 목적을 이루었어도 마음이 편치 않았던 모양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살던 집으로 돌아오던 날 수많은 지지자가 모였다. 그는 “늦더라도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는 말을 했다. 일부에서는 박 전 대통령이 헌재의 판결을 받아들이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는 말들을 하고 있지만 현재로선 그런 생각이 없는 것 같다. 대통령의 예우마저 포기한 박 전 대통령의 소신과 양심의 자유를 누구도 건드릴 수는 없다.

얼마 남지 않은 대통령선거 드라마에 주연이나 조연 역을 맡게 될 정치 배우들이 팬 그룹을 만드는가 하면 자기 관객들 확보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정치 드라마에서 배우는 관객들이 내는 입장료, 즉 국민 세금으로 공연을 하면서 스타가 되고 누구보다 호사를 누린다. 드라마가 끝나면 관객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말지만, 그들은 늘 그 좋은 자리를 지키기 위해 교언영색으로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한다.

5월 9일 개봉될 대선 드라마에서 관객들은 어느 배우에게 손뼉을 많이 칠까. 그 드라마는 보기 싫어도 꼭 봐야 한다. 우리들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샌델이 강조한 정의의 핵심인 공동선과 미덕은 성경 여러 곳에서 만날 수 있다. 성경에 손을 얹고 선서하는 미국 대통령과 같은 국가지도자가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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