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작은 교회에 신학을 공부하였으나 평신도로 그 교회를 섬기는 장로님이 한 분 계셨다. 자신의 행동거지가 행여라도 담임목사의 목회에 걸림돌이 될까 살피며 조심하는 장로였다. 그 장로님에게 어느 대학생이 찾아와 성경을 펼쳤다. 시편 19편이었다.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함이여”를 소리내어 읽고 나서 물었다. 시편 19편의 내용은 천동설 아니냐고.

▨… 그 장로님이 빙그레 미소를 머금으며 시를 한 편 읊조리셨다.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대학생이 움찔했다. 그 장로님이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 채 조용히 물었다. 박두진 씨의 시 ‘해’도 천동설을 주장하는 것으로 보아야 하느냐고. 이 이야기는 스무 해도 더 전에 있었던 일이지만 실화다. 은퇴한 장로는 여전히 그 교회를 섬기고 있고 그 대학생은 그 교회를 떠났다.

▨… 어떤 목회자들은 은퇴한 전임 목사가 계속 자신이 담임했던 교회에 출석하는 것을 크게 달가워하지 않는다. 또 어떤 목회자들은 자신들이 목회하는 교회의 교인들이 신학을 귀동냥해서 아는 체하거나 그 지식으로 교회행정에 관여하는 것이 싫어서 신학강좌 만큼은 평신도 교육용이라 하더라도 한사코 손사래 친다.

▨…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에서는 신학은 목회자 전용이고 평신도가 신학을 아는 것은 목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하기는 중세 때까지 평신도들은 성경을 직접 읽는 것까지도 금지 당했었다. 그러므로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은 그의 성경번역이 뒤따르지 않았더라면 결코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평신도들의 직접적인 성경 접근이 종교 개혁을 이뤄낼 수 있었던 열쇠였던 셈이다.

▨… 우리 교단 평신도대학원 설립 발기인 대회가 열렸다. 사중복음을 바탕으로 영성과 지성을 함양해 성숙한 평신도 지도자 육성을 목표로 할 것이라고 한다. 아직 구체적인 청사진이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모처럼 교단에서 싱그러운 소리가 들려오나 보다. 차제에 평신도들이 신학이나 교회행정에  눈을 뜨면 목회에 걸림돌이 될런지도 모른다는 우려만은 봄눈처럼 녹아 사라졌으면…. 평신도대학원 설립에 발벗고 나서는 평신도들이 성결교회의 지성적 신앙에의 길을 개척할 것으로 기대한다면…, 너무 앞서 나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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