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왜 가인의 제물을 안 받으셨을까?

권혁승 교수
하나님은 피의 제사 때문에 아벨의 제물을 선호하신 것인가? (창 4:1~8)

인류의 최초 살인사건은 가인과 아벨의 형제 사이에서 일어났다. 당시 농업에 종사하던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바쳤고, 목축에 종사하였던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여호와께 제물을 드렸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으시고 아벨의 제물만을 받아주신 것이 형제살인이라는 비극적 사건으로 이어졌다.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물만 받아주신 이유는 무엇인가? 성경이 강조하는 피의 제사 때문인가? 하나님께서는 농업보다 목축을 더 선호하시는 것인가?

우선 레위기에 기록된 제사제도의 제물은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이후 주어진 제사제도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가인과 아벨이 살았던 시대에는 그렇게 엄격하게 규정화된 제사제도가 없었다. 그런 점에서 가인과 아벨의 제물은 후대 이스라엘의 제사제도에 대한 내용이 아니다. 여기에서 강조된 것은 제물의 종류가 아니라 그 제물을 드리는 마음의 준비와 정성이다. 곧 형식적 예배와 참된 예배가 제물의 차이를 만들어 낸 것이다.

가인과 아벨이 드린 제물은 모두 히브리어 ‘민하’로 표현되고 있다. 이 단어가 레위기 제사제도에서는 곡물제사를 지칭한다. 우리말 성경에서는 이를 ‘소제’라고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이 단어의 본래 의미는 ‘선물’을 뜻한다. 곧 하나님께 정성스럽게 준비하여 드리는 선물로서의 제물을 의미한다. 가인이 드린 곡물제물이든 아벨이 드린 피의 제물이든 모두가 마음의 정성을 모아 드린 ‘민하’이다.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물을 받지않은 것은 제물의 종류가 아니라 그것을 드리는 가인의 잘못된 자세 때문이었다. 성경본문은 그런 점을 몇 가지로 지적하고 있다.

첫째 가인의 제물은 첫번째 것을 드린 게 아니었다.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기름’으로 제물을 준비하였다. 그러나 가인이 드린 제물은 ‘첫 열매’가 아닌 단지 ‘땅의 소산’이었다.(3절) 둘째 제물이 거부되었을때 가인이 보여준 자세이다. 가인은 자신의 제물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안색이 변할 정도로 분노를 표출하였다.(5절)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취할 바른 자세가 아니다. 그는 자신의 제물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점을 부끄럽게 여기면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살펴보았어야 했다. 셋째 가인은 죄를 다스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죄의 유혹에 빠지고 말았다.(7절) 그런 지적에도 가인은 돌이키지 않은 채 동생 아벨을 죽이는 무서운 죄의 유혹에 말려들었다.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신 것인가? (출 9:12)
출애굽과 관련하여 중요한 내용은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진 것이다.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지면서 애굽 온 땅에 열 가지 재앙이 내려지게 되었고, 결국 바로는 어떠한 조건도 없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보내 주었다. 그런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은 애굽의 모든 백성들에게 더욱 명확하게 알려지게 되었다. 물론 그런 출애굽 과정은 이스라엘백성들에게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바르게 심어주는 결과를 가져왔다.

여기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점은 그런 바로의 완악하여짐을 하나님께서 주도하셨다는 점이다.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다’라는 표현이 11번이나 나온다.(출 4:21; 7:3, 13; 9:12; 10:1, 20, 27; 11:10; 14:4, 8, 17) 만일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신 것이 하나님이시라면, 바로는 책임이 전혀 없게 될 수도 있다.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의 표현 뒤에 숨어 있는 본래의 의도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하나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 그것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부여하시면서 선택의 권한을 위임하셨음을 의미한다. 출애굽 과정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바로가 지니고 있는 자유의지나 선택의 권한을 배제시키지 않으셨다. 그런 점은 바로가 자신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다는 성경의 증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출 7:13; 8:15, 19, 32; 9:7, 34, 35)

그렇게 스스로 완악해진 바로의 마음을 근거로 하나님께서 출애굽의 역사를 이끌어 가신 것이다. 순서적으로는 바로가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완악하게 한 것이 먼저이다. 그렇게 완악하여진 바로의 마음은 하나님의 어떠한 것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것은 마치 뜨거운 태양이 진흙을 말려 단단한 벽돌이 되게 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일단 부정적인 마음이 생기면, 어떠한 것도 그런 거부감을 완화시킬 수가 없다. 반면에 같은 태양은 수용성을 지니고 있는 초를 녹여 물이 되게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다는 것은 바로가 자신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 이후의 후속조치였다. 그것은 바로가 지닌 자유의지의 활동을 통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는 원인이 아니라 결과인 셈이다.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게 된 것은 하나님께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선택권을 갖고 있는 바로에게 직접적인 원인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다는 표현이 성경에 나오는 것은 모든 결과를 하나님께 돌리는 히브리적 사고방식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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