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된 개혁세력·‘텅빈 예배실’이 증언

마르부르크 옛거리

츠빙글리와 루터는 성찬 문제로 갈등했고, 1529년 마르부르크에서 양측은 종교대화(Marburger Religionsgesprach)를 통해 서로의 차이를 조율하기 위해 노력했다. 성찬에 그리스도가 임재하느냐 아니면 단순히 성찬은 그분을 기념하는 공동체의 행위냐는 것이 논쟁의 쟁점이었다. 이 회의는 황제와 가톨릭 제후에 맞서 종교개혁 진영의 단일함을 만들기 위해 헤센의 영주 필리프의 요청을 만들어졌으며, 당대 스위스와 독일 대표 신학자들이 대부분 참석한 신학적 대화의 장이었다.

츠빙글리와 루터의 대화
회담이 열린 란트그라펜성을 찾았다. '문화역사 박물관'으로 탈바꿈한 성의 내부에선 다양한 전시회가 열리는데, 서쪽편 건물 3층에서 10월 1일부터 4일까지 대화가 진행됐다. 그곳에는 1869년 그려진 큰 그림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당시 회의를 묘사한 장면에서 루터와 츠빙글리는 대화를 나누고 있다. 무언가를 쓰며 책상 위를 손으로 가리키는 루터와 다른 손가락으로 하늘을 지적하는 츠빙글리가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치열한 회의와 중재 노력에도 최종 합의는 무산되었다. 루터와 츠빙글리는 성만찬에서 서로의 주장을 양보하지 않아 결국 종교개혁세력은 독일 중부와 스칸디나비아 반도 쪽으로 루터파가, 스위스와 네덜란드와 스코틀랜드 쪽으로 개혁파가 독자적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또 구심력이 약화된 종교개혁세력은 결국 츠빙글리의 죽음과 루터의 사후 슈말칼텐 전쟁에서 패배의 아픔을 겪게 된다.

종교대화가 열린 곳 옆에는 예배실이 있는데 50여 명이 함께 예배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종교대화가 잘 마무리됐다면 이들은 이곳에서 감격 속에서 함께 성만찬을 드리며 예배했을 것이다. 그러나 텅 빈 예배실은 그 날의 아픔을 증언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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