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는 최고의 여행이다. 편한 의자에 앉아서 역사의 준령을 거슬러 오를 수도 있고 미래의 시간을 향할 수도 있다. 아파트 일층에서 저 멀리 고산에 사는 사람들의 습속을 들여다 볼 수 있으며 아주 깊은 밤에도 먼 나라  신비로운 섬의 장례식을 접할 수 있다. 단순한 지형이나 산수뿐 아니라 사람의 가장 내밀한 가치 정서에까지  다다를 수 있으니 독서는 참으로 경이로운 여행길 아닌가, 독서는 카타르시스라는 길을 지나 자신의 삶에 대한 인식의 점도를 높여가는 아름답지만 고독한 행위이다.

언제부터 여행을 독서로 이해하기 시작했을까. 고등학교 은사와 함께 떠난 구채구 여행에서 그녀의 문학에 대한 열정적인 토로를 들으며 나는 그녀를 읽고 있었다. 황룡의 기이한 물빛에서 창조주의 우아한 무오(無誤)를 읽었으며 바람이 살짝 불어 자작나무 잎이 우수수 떨어질 때 오소소 삶의 한기가 다가오던 순간 선명하게 펼쳐진 생의 한 면을 읽었다. 그리하여 이제 ‘여행=독서’라는 수식에 이르렀다. 앉아서 하는 여행이 독서라면 몸으로 하는 독서는 여행이라는 것.

무려 삼십 년의 세월 저쪽에서 젊음과 신학이라는 공통의 분모를 지녔던 사람들이 ‘추억과 비젼트립’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뭉쳤다. 서울신학대학원(M.Div.)11기, 여행의 특징 중 하나가 사람이 좋으면 장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점. 군목출신의 여행 지휘자는 삼국지를 열 번을 읽으셨다던가. 그래서 삼국지의 발원지인 형주를 경유하여 장가계를 가게 되었다. 형주시내에는 어마어마한 청룡언월도를 든 관우동상이 있었다.

공자와 함께 유일하게 성인의 무덤을 의미하는 림(林)이 들어간 관우는 한 주인을 지순하게 섬긴 탓으로 많은 황제들의 정치적 책략도 있겠지만 유비보다 더 숭앙을 받는 듯 했다. 형주 고성은 고성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을 만큼 주변이 도시화 되어있었다. 해자는 길고 돌로 싼 성곽은 수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강하고 단단해 보였다.

형주박물관에서 본 서한시대의 미이라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천 여년이라는 세월 속에서도 사체가 거의 손상되지 않아 장기까지 적출해 보관하고 있었다. 함께 출토된 목기들의 단아함과 나무 빗의 섬세함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워낙 나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미이라를 담고 있던 관의 나무종류가 정말 궁금했지만 알 길이 없었다. 발굴된 형태대로 재현해놓은 무덤 속의 문이라니….

그 깊은 땅속에 묻으면서도 햇살이 들어오게 만들어놓은 문을 보며 생각이 참 많았다. 오래된 비단의 문양과 아취도 참으로 놀라울 정도여서 ‘우리가 사는 현대의 발전이 정말 발전인가’라는 회의를 들게 했다. 영화 아바타의 진원지인 원가계는 두 번째 대한다 해서 그 놀라움이 작지는 않았다.

아주 오래된 자연이 미래의 시대를 나타내는데 깊은 영감을 주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신선하다. 자연이 지닌 창의력을 생각하고 있을 때 주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가 우렁차게 솟아올랐고 풍경 속으로 들어가는 길에서 저절로 터져 나오는 찬양!

열 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무안으로 되돌아오는 길에는 삼십 년을 축약한 이야기들이 펼쳐졌다. 첫 번 모임에서 군대를 가겠다고 전했는데 이제 전역신고를 다시 한다는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삼십년이라는 긴 세월을 지금도 영혼에 대한 탐구를 계속하는 순수한 영혼의 에세이, 특별히 약한 자들만을 중점적으로 돌아보는 목회길.

“아, 글쎄 아주 멀리서 어느 집사님이 새벽 예배를 오시는데 오가는 길이 한적하여 무섭지 않냐고 하니 목사님이 매일 동행해주셔서 천사가 목사님으로 분하여 동행했던 것 아니겠냐”는 간증에 이어 “목사님이 꿈에 나타나셔서 저를 하도 나무라시기에 아이고 이제 큰 시험 들겠구나 하며 쫄아 있는데 그래서 인제 담배 끊으려구요.” 저절로 미소 짓게 하던 반전, 모든 사람이 큰 목회를 꿈꾸지만 작은 무리라도 천국까지 데리고 가면 그게 큰 목회 아니겠냐는 고백, 장가계의 자연을 보며 아름답다 여기듯이 참으로 하나님께서 사랑할만한 인생들 아닌가.

우람한 나무 한그루 보았네/ 삼십년의 세월이 빚어낸 나무였네/
신앙은 뿌리로/순종은 순으로/ 고뇌는 가지로/
꿈은 잎으로 /사랑은 꽃으로 화했네/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실만한 나무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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