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복 장로
여러 곳에서 새해 인사를 메일과 카톡으로 받았다. 같은 그림에 깔린 음악, 판에 박힌 글들이 대부분이라 감흥이 없다. 유행처럼 번지는 퍼 나르기 인사말이다. 스트레스와 답답함에 질려 보낸 이의 이름만 기억하고 보는 족족 지워버린다. 밤의 고요함을 깨는 카톡 도착 신호음도 거슬린다. 이름을 잊지 않고 챙겨주는 이의 성의는 고맙지만 기계와 상품으로 덧씌운 그림과 글은 마음에 서정감을 전혀 주지 못한다.

전화 목소리가 듣고 싶다. 단 몇 자라도 직접 손으로 쓴 마음의 글을 받고 싶다. 정보화시대라고 애써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마음을 가지면서도 그게 잘 되지 않는다. SNS에서의 허례허식이 어느새 우리들의 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아내 친구가 이런 넋두리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같은 모임의 멤버가 새벽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복음찬송을 가미한 긴 성경 구절을 보내주는데 처음에는 고맙다고 여기면서 읽어 보곤 했는데 이제는 짜증이 나고 질려 카톡 음만 울려도 신경이 모로 선다”고 한다. 단박 보내지 말라고 하고 싶지만 그래도 나를 생각해서 보내주는데 상대방이 오해할까봐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뭔가 정보의 이용이 잘 못되고 있다는 감이 든다. 정보의 목적과 효과는 상대방에게 의사를 전달하고 동의를 얻는데 있다. 그런 의미에서 상대방을 고려치 않는 일방적인 말이나 글은 정보의 쓰레기에 불과하다. 우리 주변을 보라. 정보가 찬바람에 휘몰리는 종이쪽지처럼 온 천지에 뒹굴고 있지 않는가.

하지만 우리는 정보를 멀리 할 수는 없다. 정보를 잘 운용·관리하면 생활에 윤택을 더해 준다. 숱한 정보 가운데서 필요한 것을 취하여 유익하게 만드는 재주가 필요하다. 정보의 출처를 나무라서는 시대에 뒤쳐질 수밖에 없다. 스마트폰 하나로 업무를 보거나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접하는 편리한 시대이다.

요즘 편지를 부치기 위해 우체국을 찾는 사람이 많이 줄었다. 어릴 때의 향수를 가져다주는 빨간 우체통도 눈에 띄지 않는다. 각종 모임을 알리는 수단도 문자 메일이나 카톡이 대신한다. 우편료도 안 들고 금방 연락 여부가 체크된다. 스마트폰 시대에 들어오면서 메일이나 카톡으로 편지를 쓰고 바로 답장을 받는 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전자세대인 젊은이들은 빠른 손놀림으로, 자판에 익숙치 못한 세대들은 천천히 하지만 재미를 붙여 친구에게 서로 안부를 전하면서 스마트폰과 친밀해 진다. 정보시대에 순응해 가는 모습이다.

스마트폰 글짓기에 재미를 붙인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처음 문자를 날렸을 때 축하해 주던 며느리가 이제는 카톡으로 이래저래 간섭하고 답을 요구하니 죽을 지경이라 아예 카톡을 닫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그런 일도 있겠지만 눈에 가물가물한 자판을 만져가며 하나하나 글을 만들어 내는 어른들에게 박수를 보내야 하지 않을까.

자기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일은 쉽지가 않다. 그러나 평상시 쓰는 말을 군더더기 없이 문자로 대신한다는 생각을 가지는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어른들이 스마트폰으로 문장을 만드는 버릇을 하면 그 상승효과는 아주 크다고 생각된다.

글을 쓰면 함부로 말하듯 하지 않고 좋은 낱말을 골라 쓰려는 습관을 갖게 되어 개인정서에 좋은 영향을 주게 된다. 자음 모음을 맞추면서 생각을 집중하므로 치매를 막게 해주는 효과도 분명히 있다. 또 메일이나 카톡을 받는 수신자는 글을 읽으면서 보내는 이를 생각하는 기회를 함께 가질 수 있다.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찌니라(로마서 15:2)라는 말씀을 기억하면서 정보기기와 인간의 정서를 조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스마트폰을 이용했으면 한다.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