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자질이 남만 못하여 열 배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면 그 결과가 보잘 것 없었을 것이다. 학문을 한다는 것은 자갈밭에 벼를 심는 것과 같아 땀과 노력이 없이는 벼가 잘 자라지 않는다. 그리고 비옥한 땅이라고 그 땅만 믿고 북돋우거나 김매는 노력을 제대로하지 않는다면, 자갈밭보다 더 잡초가 무성해질 것이니 좋은 땅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 성리학으로 일가를 이루어 한때는 연산군의 스승 역할까지 감당했었던 정여창(1450~1504)이 김종직의 문하에서 공부하던 시절을 떠올리며 자갈밭의 벼를 논했다. 그뿐만 아니다. 정여창은 “이 세상에 태어나 다른 사람에게 어떤 은택도 주지 못하고 그럭저럭 세월만 보낸다면 그는 하늘과 땅 사이의 한 마리 좀벌레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는 정이천의 일갈에 동의하며 자신의 호를 일두(한 마리 벌레)라고 지을만큼 다른 사람에게 은택을 주는 삶을 추구했었다.

▨… 또한 세조의 친손자인 성종에게 “단종의 폐위같은 변고가 다시 일어난다면 기쁘게 성삼문이나 박팽년과 같은 사람이 되겠다”고 직언했던 스승 김종직의 기개를 정여창은 누구보다 깊이 샀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정여창은 무오사화를 피하지 못했고 아직은 일할 수 있는 나이에 목숨을 잃었다. 갑자사화에서는 부관참시되는 치욕까지도 피하지 못했다.

▨… 무오사화, 갑자사화가 연이어 터지던 때처럼 세월이 하수상한 탓일까? 어두운 거리에 촛불이 타오른 지가 몇 달째이며, 그 반대 편에서 태극기가 물결친지가 몇 달째인가. 정여창처럼 자갈밭에 벼를 심듯 힘써 공부한 사람들이 줄줄이 법정에 서고 그럭저럭 세월만 보낸다면 한 마리 좀벌레에 지나지 않는다고 자신을 향해 날을 세우던 똑똑한 분들이 특검의 조사를 받느라 줄을 서고 있다.

▨… 김종직의 기개를 반만큼도 아니, 흉내조차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통령 후보하겠다고 출사표를 던지는 것을 보면 오늘의 우리나라 정치판은 사색당쟁을 닮아도 너무 닮았다. 그러면서도 내건 구호는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 정치다. 정치하는 이들의 이런 허위를 좀벌레 되기도 마다 않는 교회가 밝힐 수 있을까. 이런 교회의 후안무치를 후대의 교회사가들은 어떻게 평가할까. 괜한 염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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