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설교자가 실패하게 하려면

손동식 목사
다양한 집회를 인도하는 대부분의 설교자는 거의 본능적으로 설교하기 편한 교회가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교회가 있음을 안다. 곧 동일한 설교자요, 동일한 본문으로 설교한다 할지라도 어떤 회중을 만나느냐에 따라 설교자는 설교의 파도를 타기도 하고 예기치 않게 파도 아래로 침몰하기도 한다. 물론 능숙한 설교자는 스스로 돌파구를 찾아내지만 대부분의 설교자들은 회중이 누구냐에 따라 무의식중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이는 설교가 가진 독특한 성격 때문이다. 설교 내용에 있어서 설교자가 주도권을 가질지라도 설교자가 강단에 서는 순간, 설교는 화자와 청자가 함께 하는 상호적 성격을 띄게 된다. 곧 설교는 말하기와 듣기이며, 설교가 진행되는 동안 설교자와 회중 간에 ‘주고 받기’가 존재한다.

영국의 위대한 강해설교자, 마틴 로이드 존스(M. Lloyd-Jones)는 이것의 중요성을 이렇게 간파한 바 있다. “참된 설교에는 언제나 주고 받는 것이 있다… 설교자와 회중간의 상호작용, 행동과 반응이 있으며 이것이 설교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오래전 설교의 왕자 스펄전(C. H. Spurgeon)은 설교자가 냉담하고 차가운 회중을 만났을 때 설교자의 설교적 역량이 반감될 수 있음을 경계한 바 있다.

특히 설교에 대해 공평치 못한 무자비한 논평을 일삼는 회중이나, 설교자가 생명과 죽음 사이에서 열렬히 호소할 때조차도 시계를 바라보고 있거나 평상시보다 5분이 더 길어졌다고 불평하는 회중이 있을 때 설교자의 열정은 깊은 상처를 받는다. 특히 젊고 경험이 부족한 설교자일수록 더욱 그러한데 이는 마치 ‘천사가 빙산 속에 갇히는 것’과 같다.

또한 설교자가 뜨거운 열정으로 말씀을 전했으나 그것에 관해 전혀 반응하지 않는 무덤덤한 교인을 만날 때 설교자는 낙담하게 된다. 특히 장소가 크고 회중이 적은 텅빈 좌석들은 설교자를 더욱 움츠러들게 만들 수 있다.

또한 예기치 않은 회중의 사소한 무질서, 예를 들어 구두 발자국이나 아이 울음소리, 많은 교인의 지각과 같은 사소한 요인들 역시 설교자의 심령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특히 간과하기 쉬운 이러한 사소한 요인이 가져올 수 있는 위험에 관한 스펄전의 조언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크고 심각한 혼란보다는 아주 하찮은 문제가 오히려 설교자의 열정을 더 잘 파괴하는 법입니다. 큰 낙심이 있을 때에 설교자는 그 문제에서 스스로 물러서서 하나님께 자신을 의탁하며 새 힘을 얻습니다. 그러나 사소한 침체가 있을 때에는 염려하고 마음이 불편하여 오히려 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설교라도 냉담하고 차가운 회중과 접촉하면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반대로 독수리가 비상하는 것 같이 연약한 설교자의 설교를 하늘로 힘있게 솟구치도록 돕는 성도들도 있다.

필자의 생각에 이러한 회중은 크게 세 가지 부류이다. 첫째, 설교자가 말씀을 전할 때 사모함과 기대감으로 눈이 반짝거리며 빛나는 회중들이다. 열린 마음과 뜨거운 가슴을 가진 회중을 만나면 설교자는 자신의 역량 그 이상으로 설교한다.

둘째, 말씀을 들을 때마다 설교자와 눈을 맞추며 고개를 끄덕이는 성도다. 그런 성도는 무언의 목소리로 설교자에게 힘을 더해 준다.

셋째, ‘아멘’으로 크게 화답하는 성도이다. 설교자가 신실하게 말씀을 선포하고 그 신실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아멘으로 화답하는 말하기와 듣기에는 선포와 응답이라는 성경적인 주고 받기가 존재한다. 그리고 이러한 주고받기를 통하여 설교자와 회중은 쌍방향으로 성령의 은혜를 경험하게 된다.

참된 설교란 설교자 홀로 외치는 외로운 메아리가 아니요, 설교자와 회중이 함께 주고 받으며, 함께 어우러지는 말씀의 하모니(harmony)이다. 하나님은 그런 강단, 그런 회중 가운데 큰 은혜를 베푸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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