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생 기도로 뒷바라지한 장한 어머니 유기순 권사
4代 36명 한 교회서 신앙생활
장로만 4명, 충성된 6남매

한 평생 기도로 6남매를 뒷바라지 해온 유기순 권사(미당교회·82세). 그녀는 충남 청양에서 살고 있다. 서울에도 자식들이 마련해준 집이 있지만 청양에 머무를 때가 더 많다. 그곳에는 그녀의 고단한 인생에 가장 큰 힘이 되어준 교회가 있다. 한때 그녀는 그 교회를 목숨을 걸고 다녔다. 믿지 않는 가정에 시집을 가서 농사 지으며 6남매 자식까지 키우며 힘든 생활을 하면서도 그녀는 신앙을 잃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청각 장애가 있는 남편이 술에 취하면 그녀는 자식을 지키려고 온 밤을 하얗게 세우며 하나님을 부르고 또 불렀다.

남편은 어린 자식들을 남겨두고 먼저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나이 49세에 여섯 자식을 둔 가장이 된 그녀는 하나님께 더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새벽마다 먼 길을 걸어와서 하나님께 눈물로 기도를 드렸다. 없는 살림이었지만 무조건 교회에 우선순위를 두었다. 미당교회의 재정위원장을 맡아 헌신하고 봉사하며 농사 수입과 용돈을 모아 하나님께 바쳤다.

한 시간씩 걸어 교회서 기도
그녀의 이런 헌신과 눈물 어린 기도 덕분에 6남매 모두가 화목한 가정을 일구었고, 신앙생활도 잘하는 믿음의 식구가 다 되었다. 무엇보다 이들 6남매는 25년째 한 교회, 바로 임마누엘교회(이성훈 목사)를 섬기고 있다. 첫째 딸 박홍순 권사(61세)와 사위 이천무 권사(63세), 둘째 딸 예순 권사(58세)와 사위 김동인 장로(61세), 셋째 딸 분순 장로(55세)와 사위 노성배 장로(62세). 그 밑으로 준순 안수집사(53세)와 며느리 김종원 권사, 진순 안수집사(50세)와 며느리 황유순 집사, 막내 대순 장로(46세) 부인 고숙자 집사 이들 6남매는 믿음의 가문을 이뤘다. 아들과 딸, 그리고 사위와 며느리까지 포함해 장로 4명, 권사 4명, 안수집사 2명, 집사 2명이다. 여기에 손자와 증손자까지 합치면 36명이 한 지붕 아래서 신앙생활을 같이 한다.

유 권사는 지금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새벽제단을 쌓고 있다. 유 권사의 기도는 늘 변함이 없다. “자식과 자손들 예수 잘 믿게 해주세요”이다. 여전히 든든한 어머니이고 싶은 유 권사를 지난 1월 22일 서울에서 만났다. 막내 아들집으로 온 가족이 모였다. 이날은 명절을 앞두고 있어 출석률이 좋았다. 외손녀네 빼고 35명이 모였다. 집안에 발 디딜 틈도 없었다. 대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먹을 음식장만이 보통 일은 아니었지만, 가족들의 입가엔 웃음이 떠날 줄 몰랐다. 식구가 많다 보니까 생일과 기념일 등 행사가 많아서 주일이 아니더라도 한 달에 한번은 이렇게 만난다. 그래서 둘째 며느리 황유순 집사는 “시댁이 남의 집 같지 않고 편하다”고 말했다.

화목의 비결, 어머니의 기도
유 권사의 4대 대가족을 묶어주는 ‘해피 바이러스’는 역시 ‘신앙’이다. 어머니의 신앙에 대한 이야기가 자식들 입에서 쏟아졌다.

첫째 며느리 김종윤(53) 권사는 “어머니가 동네에서 꽤 유명인사죠. 동네에 서리가 내렸는데 글쎄 교회 일로 바빴던 어머니의 고추밭에만 내리지 않았고, 강아지를 낳아도 다른 집은 한두 마리인데 어머니 집에선 10마리씩 낳았다”고 자랑했다. “얼마나 신앙이 좋았으면 예수 믿으려면 저 집안처럼 믿어라. 유 권사와 그 자녀들처럼 믿어라”고 말했다며 둘째 딸 박예순 권사는 어머니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 들었다.

장남 박준순 안수집사도 “군대에 있을 때 어머니가 3개월 만에 면회를 오셨는데, 다른 말씀은 안하시고 ‘예수 믿어라’라는 말씀만 하셨어요”라며 “지금도 드리는 용돈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쓰시고 돈이 모자란다고 말씀 하신다”고 말했다.

이들 형제의 가정은 마치 교회와 같다. 어떤 모임이든 모이면 예배부터 드리고, 늘 웃음소리로 뜰썩인다. 셋째 박분순 장로는 “하나님 중심, 교회 중심으로 만나니까 오해도 없고 다른 말이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우애 또한 깊다. 화를 내고 싶어도 어머니 때문에 ‘화는 최소화, 웃음은 극대화’한다는 것이다. 오죽 했으면 6남매 가정의 가훈이 ‘엄마 앞에서 싸우지 말자’이다. 첫째 사위 이천무 권사는 “처갓집에서는 한 번도 싸움이 안났어요. 35년간 싸운 것을 못 봤어요”라고 말했다. 둘째사위 김동인 장로도 “매일 만나도 형제간의 우애가 좋고 서로 양보하고 희생하려고 해서 그런 것 같다”고 거들었다.

교회에서 선임 장로인 셋째 사위 노성배 장로가 이런 분위기를 띄우는데 앞장서고 있다. 막내 박대순 장로는 “형제들이 임마누엘교회로 모이게 된 것도, 각자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것도 셋째 누나 부부의 덕이 크다”면서 “다른 형제들의 부족함을 채워주고 배려를 잘 해 준다”고 말했다. 다섯째와 막내는 셋째 네가 운영하는 ‘벧엘 파이프’에서 일을 배워서 지금은 새로운 사업장을 운영하고 있다. 가정과 교회, 직장에서도 서로 도우며 돈독한 우애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노 장로는 “형제들이 내일처럼 도와줘서 사업이 번창할 수 있었다”고 손을 가로 저었다. 

시누이와 올케의 감자탕 집
이 뿐만이 아니다. 둘째와 막내 며느리가 함께 식당을 열었다. 온 가족이 모였을 때 어색한 사이가 시누이와 올케인데 이들은 남보란 듯이 감자탕집을 개업한 것이다. 처음엔 형제들도 말리려 했다. 행여 형제간에 의가 상할까 싶어서다.

하지만 시누이와 올케는 주변 걱정과 달리 소위 대박을 쳤다. 셋째 분순 장로는 “지금은 감자탕 2호점 개설을 추진할 정도로 잘 된다”면서 “감자탕 집을 운영하며 힘들게 번 첫 열매를 헌금해 지난해 피지에 유치원을 세웠다”고 귀뜸을 했다.

이렇게 형제들이 서로 화목하고 형통한 것은 모두 어머니의 기도 덕분이라고 자식들은 입을 모았다. 하지만 어머니 유 권사는 “제가 기도를 하면 얼마나 했겠슈. 그저 하나님께서 다 하신 거지”라고 수줍어 했다. 
그렇다고 6삼매에게 늘 웃는 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날 없었지만 그중 가장 가슴 아픈 일은 갑자기 장녀 박홍순 권사가 암 판정을 받은 때였다. 첫째의 암 선고는 가족들에게 충격이었다. 하지만 어머니와 형제들은 포기하지 않고 기도의 힘을 모았다. 담당 의사는 우려했던 것과 달리 많이 호전되고 있다고 말했다. 첫째는 “어머니와 형제들의 기도 덕분에 용기와 희망을 얻고 있다”고 환하게 웃었다.

어머니 유 권사에게 “자식 중에 누가 가장 좋으냐?”고 물었다.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예수 잘 믿는 자식이 제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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