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독재의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 김영삼 씨가 단식투쟁을 벌이던 때 국내의 신문이나 TV는 김 씨의 단식사태에 대해 단 한줄도 보도하지 못했다. 외지에 실린 단식투쟁 사진과 가사를 본 어떤 사람이 이름깨나 있는 유명 기자에게 편지를 보냈다. “언젠가 당신은, 국회의원 당신들 이래서야 되겠느냐고 쓴 일이 있지요. 이제 나는 신문기자 당신들 이래서야 되겠느냐고 말하고 싶습니다.”

▨…정의를 위해서, 민주화를 위해서 나름으로 진실한 글을 쓰려고 노력해왔던 그 기자는 그때의 참담한 심정을 후일 이렇게 밝혔다. “일찍이 각오는 무던히 되어 있었던 편이었다. 그러나 막상 직격탄을 가슴에 맞고난 나는 하늘을 쳐다볼 수 없었다.”(김중배·민초여 새벽이 열린다.)암울했던 시대에 글을 써야했던 사람들은 자신의 불이익뿐만 아니라 가족과 동료에게 가해질지도 모르는 위해를 항시 염두에 두어야만 했었다.

▨…우리 교단에 문제가 발생하면 글을 쓰기가 두려워진다. 총회 지도자나 총회본부 산하기관에 문제가 불거졌을 때는 사실 보도라 할지라도 껄끄러워진다. 우리 교단의 목사님들, 장로님들과 연관되어 진 일들이 알려져서 좋을 것인가라는 질문이 제기될 때는 언론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수없이 자문했으면서도 망설이게 된다. 차라리 군사정권하의 불이익이 훨씬 감수하기 쉬웠던 것 아닐까 싶을 정도로.

▨…왜 일까? 우리교단의 교회, 목사, 장로들에게 관련된 기사를 쓰고 보도하기가 조심스럽기만 한 것은. 단언하지만 개인적인 불이익이나 후환이 두려워서는 아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교단의 발전을 위하는 길이냐는 고민이 없다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이 먼저라는 사명감이 없다면 글을 쓰면서 주저하거나 심사숙고를 거듭해야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한국성결신문이 교단지인가 아닌가는 교단과 독자들이 판단할 일이다. 다만 교단지라는 정의를 교단 지도부가 신문발행의 실제적 담당자가 되어야 한다는 협의의 의미로 이해한다면 신문은 홍보전단지로 전락할 것이다. 교단이 발행을 허락했는가, 신문의 내용이 교단발전에 기여하고 있는가가 교단지의 자격을 규정하는 조건이라고 믿기에 본지는 교단지로서의 사명을 더욱 다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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