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형은 목사
엔도 슈샤쿠가 쓴 책 중에 ‘예수의 생애’가 있다. 신적인 능력을 가진 그리스도보다 인간 예수에 초점을 맞추고 예수의 생애를 전개하는 작품이다. 작가는 이 책에서 소설가의 상상력을 충분히 발휘하지만 성서 해석의 깊이도 탄탄하다.

예수가 베드로 장모의 열병을 고치는 사건이 성경에 나온다. 공관복음서에 다 기록돼 있는데 마가복음 1장 30~31절이 이렇다.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는지라 사람들이 곧 그 여자에 대하여 예수께 여짜온대 나아가사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 여자가 그들에게 수종드니라.”

엔도 슈샤쿠는 이 사건을 색다르게 본다. 예수는 열병을 고치지 않았다. 다만 그 가련한 여인의 속을 꼭 붙잡고 계셨다는 것이다. 대학 1학년 때 이 책을 읽으면서 먼저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성경에는 예수님이 그 여인의 병을 고쳤다고 돼 있는데 왜 이렇게 썼을까 했다.

엔도 슈샤쿠의 예수 해석에 대해서 조금 알게 되면서 그가 인간 예수를 깊이 들여다보았다는 것을 이해했다. 저자가 이 장면에서 말하는 것은 공감이다. 남의 상황을 마음 깊이 느끼는 것, 영혼으로 타인을 끌어안고 그 삶의 고통을 겪는 것 말이다.

지난 월요일이 2014년 4월 16일에 ‘4·16세월호참사’가 일어난 지 꼭 1000일이 되는 날이었다. 그날 씨비에스 기독교방송이 송출한 특별대담에서 진행자가 대담자로 나온 임종수 목사에게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부탁했다.

가족을 잃은 분들 특히 자식을 잃은 부모님들에게 도대체 어떤 말로써 위로가 될 수 있겠느냐며 드릴 위로의 말씀을 찾지 못하겠다는 것이 임 목사의 대답이었다. 그러면서 덧붙인 말이 이러했다.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도 함께 아프고 우리도 함께 울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날 특별대담의 제목이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였다. 공감 말이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후에 많은 지식인과 역사에 대한 식견을 가진 사람들이 이 땅의 역사는 이제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라고 했다. 온 국민이 이 비극적인 사건으로 집단 우울증을 앓았다. 이 참극이 이 사회의 모든 사람들에게 트라우마가 되었다.

그러나 사건이 발생한 바로 그날부터 의혹은 시작되었고 사건의 진실을 은폐하려는 집단이 있다는 것이 공공연해졌다. 노골적으로 이 사건을 정치 색깔의 틀에 구겨 넣으려는 시도가 진행되었다. ‘그만큼 했으면 됐다, 이젠 그만 좀 하자’는 얘기가 설득력을 갖기 시작했다. 남의 불행에 조금 동정해주던 사람들은 이 불편한 사건을 더 이상 오래 기억하고 싶지 않기도 했을 것이다. 처음에 함께 앓았던 그 처절한 고통의 공감이 점점 사그라지고 있었다.

그런데 사태 후 2년 반이 되는 즈음에 반전이 일어났다. 작년 10월 하순에 박근혜-최순실 사태가 불거지면서 세월호가 광장의 관심사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세월호의 진실을 바다 속에 수장시키려는 사람들과 국정농단 사태를 저지른 자들이 겹친다는 것이 언론 보도, 검찰과 특검의 수사, 국정조사 등으로 점점 분명해졌다. 그러면서 아직 바다 속 뻘에 박혀 있는 세월호처럼 문 잠긴 마음의 구석방에 묻혀 있던 공감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 공감의 물결이 촛불로 타올랐다.

기독교 복음의 핵심이 성육신이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사건이다. 신학적인 논리로 말한다면 성육신이라는 방법 말고도 하나님은 얼마든지 세상을 구원하실 수 있다.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시니 그렇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육신을 택하셨다. 하늘의 보좌를 버리고 자신을 비워 사람이 되는 길이다. 그 중심에 공감이 있다.

쏟아지는 소낙비를 맞고 있는 사람에게 우산을 씌워주는 것이 아니라 내 우산을 접고 함께 비를 맞으며 옆에서 걷는 것이다. 성육신을 공감으로 읽으면 그렇게 세상에 오신 예수의 사역이 잘 이해된다. 예수의 삶과 사역에서 공감은 늘 심장이었다.

세월호 1000일, 진실 규명과 이런 참사가 없는 사회를 만드는 일이 이제야 시작이다. 한국 교회가 이 일에 공감해야 한다. 사람 살 만한 사회에 없어서는 안 될 것이 공감이다. 세월호 사태는 정치 문제가 아니다. 인륜의 문제며 하늘 아버지가 깊이 공감하고 계시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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