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에서의 최상의 몸짓

손동식 목사
설교에서 중요한 것은 설교의 내용과 적절한 전달법이다. 그러나 그것을 극대화 하거나 극소화하는 사소한 요소가 있는데, 바로 설교자의 몸짓과 제스처이다. 설교의 왕자, 스펄전은 자신이 관찰한 설교 강단에서의 괴상한 몸짓을 크게 다섯 가지로 분류한다.

첫째,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형태로 경직된 몸짓이다. 이런 몸짓은 거대한 젓가락처럼 유연성이 없고 팔과 다리 관절의 움직임이 딱딱하여 매우 뻣뻣해 보이는 몸짓이다.

둘째, 규칙적이며 기계적인 몸짓이다. 이것은 자유롭게 움직이기보다는 정확한 시간적 간격에 따라 동일한 동작을 반복하는 단조로운 몸짓이다.

셋째, 불필요하게 힘을 많이 들이는 몸짓으로, 설교의 내용을 강조하기 위해 시종일관 두드리고 찌르고 흔드는 것과 같은 과다한 액션을 사용하는 몸짓이다. 이러한 몸짓은 회중들로 자신의 말이 아니라 몸짓에 더 관심을 집중시킨다.

넷째, 무술을 하는 것 같은 몸짓이다. 마치 상상의 적을 수비하거나 공격하는 듯한 자세이다. 다섯째, 박자가 맞지 않는 몸짓으로 말보다 손의 동작이 약간 늦게 나오는 몸짓이다.

또한 스펄전은 자신의 말을 강조하기 위해 등이나 어깨를 으쓱거리거나 손을 허리에 대고 팔꿈치를 옆으로 벌린 자세 또한 우스꽝스러운 자세라고 여겼다. 그러나 스펄전이 가장 나쁜 몸짓으로 비난한 것은 호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은 채 설교하는 행위이다.

스펄전은 말한다. “바지 호주머니에 손을 집어넣는 것은 정말 버르장머리 없는 짓이다. 회중이나 자신이 다룰 주제에 대해 우습게 여기지 않는다면 그런 행동은 결코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스펄전이 이보다 더 나쁘다고 경멸한 자세는 지나치게 세련된 티를 내는 스타일이다. 스펄전은 말한다. “이것은 정말 역겹고 가증스러운 자세다. 그것은 저속한 것보다 더 못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억지로 고상하고 품위있는 냄새를 풍기려는 저속함의 극치이기 때문이다.”

스펄전은 이런 가짜 세련미보다 차라리 ‘촌스럽고 조잡한 모습’이 훨씬 낫다고 역설한다. 왜냐하면 지나치게 깔끔하거나 잘난 체 하는 설교자에 관하여 회중들이나 일반 대중들은 어떤 벽이나 가식을 느끼기 때문이다.

스펄전은 이것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역설한다. “설교자들을 권유하여 다른 지각 있는 사람들처럼 그렇게 말하고 몸짓을 하게 할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일반 대중에게 설교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낯선 태도나 음성, 혹은 복장은 우리와 사람들 사이에 장애가 된다.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설교자는 ‘사람들’처럼 말해야 한다.”

그렇다면 설교의 왕자, 스펄전이 목표로 하는 설교의 몸짓과 제스처는 무엇인가? 이에 관해 스펄전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목표로 삼는 몸짓은 고요하고도 품위 있고 자연스러운 움직임이다. 그것은 주목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전달법의 모든 것은 하나이다. 곧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상과 정신과 언어와 음성과 몸짓이 모두 혼연일체가 되어 우리 자신의 명예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과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여 쓰임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이를 이룰 수 있다면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원칙을 범했다고 해서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자연스럽지 않을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이와 같이 설교에서 최상의 몸짓이란 그 전하는 말의 내용과 조화를 이루는 몸짓이요, 좋은 설교란 쥐어짠 작위적인 설교가 아니라 진리에 붙잡혀 자연스럽게 흘러넘치는 설교이다.

스펄전이 평생의 모토로 삼았던, 그리고 훗날 그의 목회자 대학(Pastors’ College)의 모토가 되었던 슬로건은 동일한 설교의 길을 가는 현대의 설교자들이 변함없이 기억할 가치가 있다. “나는 붙잡는다. 그리고 나는 붙잡힌다”(et teneo et tene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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