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윌리엄 셰익스피어를 읽으며 가슴이 섬뜩해지지 않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인간의 고뇌와 갈등, 탐욕과 좌절, 진실과 거짓을 파고드는 그의 집요함에 낱낱이 드러나는 인간의 민낯 앞에서 셰익스피어를 읽는 사람들은 차라리 자신의 얼굴을 감춰버리고자 한다. 아니, 감추려해도 감출 길 없는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며 오히려 통쾌해 한다. 인간은 극복할 수 없는 자기모순을 정당화하는 재주를 체득하고 있으므로.

▨… 인간의 거짓에 익숙해져 있는 현대인들에게는 어쩌면 지나가는 바람결 같을 수도 있겠지만, ‘소네트’의 한 부분도 우리의 가슴을 헤집는다. “내가 사랑하는 여인이 진실한 사랑을 맹세하면, 나는 그것이 거짓인 줄 알더라도 그대로 믿는 체할 것이다. 세상의 거짓을 모르는 멍청한 젊은이로 보이기는 싫으므로. 나는 여인에게, 여인은 나에게 서로 거짓을 지껄인다.”

▨… 교회에서 청소년들이 사라지고 있다. 청년들은 이미 오래 전에 사라졌다. 교회를 떠난 젊은이들의 한결 같은 이유는, “너나 잘 하세요!”이다. 교회가 지난 성탄의 계절에 ‘낮엔 동네잔치 열고 밤엔 나눔으로 성탄 빛 밝혔’어도 젊은이들은 여전히 ‘가나안 성도(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안나가 신자)’의 자리에서 꿈쩍하지 않는다. 기독교인 수는 증가했다는데 교회출석인원은 감소하는 이유일 것이다.

▨… ‘너나 잘 하세요’ 속에는 목회자의 진실성에 대한 비아냥이 독오른 코브라처럼 또아리를 틀고 있다. 입으로는 성령의 역사를 줄곧 외쳐대면서도 빌라도나 헤롯 같은 세속 세력과 야합하고, 대제사장처럼 자신의 탐욕을 율법적 교리로 덧칠하여, 십자가를 이 땅의 골고다에 다시 세우려 하는 어떤이들에 대한 분노임을 한국교회가 아는지 물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 그럼에도 인간의 자기모순 정당화를 받아 주시는 하나님께서는 한국교회에 새해를 허락해 주셨다. 인간의 진실의 가능성을 믿어주신 것이다. 지금은 인간이 주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인간을 믿어 주시는 시대로 변한 것일까. 그것을 소네트의 한 구절로 확인하고자 한다. “사랑은 짧은 시일에 변치 않고 심판일까지 견디어 나가느니라. 이것이 틀린 생각이라 증명된다면 나는 글을 쓰지 않으리라. 인간을 결코 사랑하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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