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아도 마음으로 느끼는 성탄
서로 위로·돌보며 교회차원 자활 교육도

성탄의 기쁨을 전하는 불빛과 장식, 형형색색 화려한 장식물들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에게도 어김없이 성탄이 찾아왔다. 세상의 화려한 성탄이 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마음으로 성탄을 바라보는 이들의 성탄 맞이는 어떨까.

서울지하철 4호선 명동역 4번 출구로 나와 노란색 보호도를 따라 계속 올라가면 예장통합 한국맹인교회(권호섭 목사, 이하 한맹교회)가 나온다. 한맹교회를 다니는 성도들의 80%는 시각장애인들이다. 나머지 20%는 대부분 그들의 가족으로, 시각장애인들의 눈이 되어주며 섬기는 역할을 한다. 담임 목회자인 권호섭 목사도 비시각장애인이다.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교회지만 한맹교회에도 성탄트리가 있었다. 본당에 한 그루, 그리고 앞마당에 작게 3그루의 트리가 설치되어 있어 근처 남산 케이블카를 타러 온 관광객들이 잠깐씩 멈춰서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시각장애인 교회에 반짝이는 트리를 설치한 이유를 물으니 한방희 장로는 “우리는 보지 못하지만 오가는 분들이 트리를 보시고 성탄절이 왔음을 알 수 있으니까요. 신앙이 없는 분들이 보고 ‘아 예쁘다’ 하시고 성탄절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좋아요”라고 답했다. 그는 또 “눈은 보여도 신앙이 없는 사람들에게 성탄의 기쁨을 전할 수 있는 것이 곧 한맹교회 성도들의 기쁨”이라고 말하며 활짝 웃었다.

옆에 있던 최명근 장로는 “시각적인 변화는 알 수 없는 대신 부르는 찬송이 달라지는 것과 연말 교회 행사가 많아지는 것을 통해 성탄 분위기를 느낀다”고 말했다.

이렇게 나름의 방법으로 성탄절 분위기를 느끼고 있는 한맹교회의 예배 순서와 풍경은 보통의 교회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시각장애인 성도들이 예배당에 들어서면 앞을 볼 수 있는 성도들이 반갑게 맞으며 팔 한 쪽을 잡고서 빈 자리로 인도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시각장애인 성도들은 장의자에 앉은 후 손을 이용해 다른 성도들과의 간격을 조정한다.

또 한맹교회에서는 서로 인사하는 소리가 유난히 우렁차다. 큰 소리로 “안녕하세요!”하고 인사하는 것은 물론이고 주변에 인기척이 나면 “누구신가요?”하고 묻는다. 아는 목소리가 들리기만 하면 곧바로 반가운 인사말이 오간다. 서로 볼 수 없는 만큼 크고 또렷한 목소리로 사랑하는 교우들을 반기는 것이다.

예배가 시작되면 이번엔 성도들의 손이 분주해진다. 성경 말씀, 찬송 가사, 주보 내용 등을 모두 점자로 읽기 때문이다. 앞이 보이는 사람들이 모든 것을 눈으로 보는 것처럼 시각장애인들은 손끝으로 모든 것을 읽는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노트북 개념인 점자정보 단말기에 성경과 찬송 파일을 넣고 손으로 읽는 성도들도 심심찮게 보인다. 예배 사회를 맡은 한방희 장로도 모든 순서를 점자로 읽으며 인도했다.

성가대의 찬양 순서가 됐다. 한맹교회 성가대 지휘자는 앞에 서지 않는다. 대신 대원들은 연습시간에 지휘자의 지휘에 따라 충분히 곡을 숙지한 다음 MP3 파일 등을 이용해 곡을 다 외운 후 성가대석에 선다. 이날 ‘거룩하신 왕’을 부른 성가대는 노래를 시작해야 하는 부분과 강약 조절, 화음 등을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노래를 부르다 쉬어가는 부분, 각 파트별로 나뉘어 부르는 부분이 지휘를 보면서 부르는 것처럼 모두 딱딱 맞아떨어졌다.

예배가 모두 마쳐질 즈음 성도의 교제 순서가 됐다. 앞뒤 좌우의 성도들과 축복과 사랑의 말을 건네는 것은 우리와 같지만 이들은 스스럼없이 손을 뻗어 서로 손을 잡고 어깨를 두드리는 스킨십이 굉장히 자연스럽다. 시선을 주고받으며 감정을 교환하지 못하는 대신 가벼운 스킨십을 통해 친교를 나누는 것이다.

예배를 마치고 성도들은 식사교제를 나눴다. 성도들은 식당에 올라가 식사했는데, 시각장애인들이 주축을 이루는 교회라 본당 진입로에는 발에 걸릴만한 턱이 없지만 1989년 지어져 노후화된 교회 건물 내부에는 계단들이 꽤 많았다. 성도들은 난간을 짚어가며 다니기도 하고, 눈이 보이는 성도들의 부축을 받거나 서로 서로 손을 잡아가며 계단을 오르내렸다. 하지만 오래 다닌 성도들은 교회 계단을 난간도 잡지 않고 익숙하게 오르내리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한맹교회는 1972년 1월 2일 시각장애인 7명에 의해 시작됐습니다. 그 후 사람들이 점점 많아져 건축헌금을 모아 1989년 2월부터 이 자리에 교회를 지어 예배를 드리게 됐습니다.”

46년 동안 시각장애인들의 신앙생활 주춧돌 역할을 해온 한맹교회는 시각장애인들의 자활을 위해서도 적극적으로 나서왔다. 지금은 교회 재건축을 앞두고 잠시 쉬고 있지만 20여 년 동안 시각 장애인들이 전문 안마사로 자활할 수 있도록 안마와 침술을 교육했다. 최근 들어서는 60~70대가 되어 후천적으로 장애를 갖게 된 중도 시각장애인들이 많아져 이들의 자활을 위해 심혈을 기울여 교육하며 도왔다. 시각장애인들의 안마 및 침술 교육은 손에서 손으로 직접 전수하는 것이기에 그 정성이 더욱 크다.

이렇게 함께 예배하고 서로 도우며 신앙 공동체를 이루어가는 한맹교회 성도들의 성탄절 소망은 무엇일까.
최명근 장로는 “우리 한맹교회 성도들이 행복한 신앙을 꾸려가는 모습을 보고 중도 시각장애인들과 삶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비 시각장애인들이 마음의 짐을 내려놓았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모습을 보고 ‘앞을 못 보는 사람들도 저렇게 행복하게 사는데 우리도 행복하게 살자’는 다짐을 할 수 있다면 참 감사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지승태 장로도 “육신의 눈으로 보든 못 보든 신앙인으로서 사람들에게 복음의 희망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똑같으니까요”라고 덧붙였다.

한맹교회 성도들의 마음 속 성탄의 메시지는 거리의 성탄 장식들보다 더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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