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근 목사
역사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1517년 10월 31일 33세의 젊은 교수 루터는 95개조 교회개혁선언문을 독일 비텐베르크 성전 벽에 붙였다. 문예부흥, 산업혁명과 함께 세계역사의 흐름을 확 바꿔 놓은 종교개혁의 횃불이었다.

종교개혁은 바로 기독교 개혁을 뜻했다. 그리고 이 종교개혁은 한 두명의 지도자가 이룬 것이 아니라 자기개혁을 이룩했던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삼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루어낸 집단항거 곧 프로테스탄트 운동이었다.  

종교개혁자들이 목숨을 걸고 로마 가톨릭교회에 도전장을 내민 원인은 교회지도자들의 부패였고 그 절정이 바로 면죄부, 곧 천국입장권 판매였다. 당시 가톨릭교회는 영혼구원과 생명증진이라는 존엄한 목표를 권력과 재력 확보라는 세속적 수단으로 변질시켰다.

성전건축비 모금을 내걸고 성직자들이 자기 배를 채우기에 급급했다. 정치권력까지 한 손에 거머쥔 교황과 추종세력은 교리와 제도를 기득권을 보호하는 도구로 전락시켰다. 성삼위 하나님만을 경배해야 할 기독교가 교황 숭배의 우상종교로 변질됐다. 무엇보다도 교회 창설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핵심진리, 곧 십자가에서의 희생을 통한 인류와 피조물 전체의 구원의 길을 무효화시켰다.

이런 때에 종교개혁이 일어났다. 먼저는 루터를 비롯한 지도자들의 뇌수와 심장에서 시작되었고, 그것이 교리개혁과 교회개혁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사회개혁, 정치개혁운동으로도 확산되었다. 성직자와 평신도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다는 ‘만인제사장론’이 인권운동, 국민교육운동의 발화점이 되었고 특히 근대민주주의 정치제도가 파도처럼 물결쳐 나아갔다. 칼빈신학에 기초하여 경제개혁 곧 자본주의가 큰 발전을 보았다. 이런 결과로 독일, 영국, 스위스, 네덜란드, 스웨덴, 특히 미국 등의 개신교회 국가들이 세계문명 발전의 선두주자가 되었다. 

종교개혁운동은 개혁의 대상이었던 로마 가톨릭교회도 새롭게 만들었다. 트렌트공회의 여러 결정, 교리와 제도의 개혁, 예수회 선교운동, 성직자들의 도덕적 각성 등의 열매도 맺었다. 하지만 지금도 로마 가톨릭교회는 개혁해야 할 것이 더 많이 있다.

‘교회 바깥에는 구원이 없다’는 구원독점의 교리는 하나님의 전능성을 제한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신부(神父)는 신부(信父)로 바뀌어야 한다. 교황(敎皇)도 그렇다. 가톨릭교회가 쓰는 한국어 성경에도 예수님은 “모든 왕의 왕”(계17:14)이시던데 어찌 사람의 직분 명칭을 왕보다 한 등급 더 높은 ‘황제’라고 하는가. 가톨릭 교종(敎宗)으로 바꾸는 것은 어떨까. 예수께서는 섬기는 자 곧 ‘머슴’이 되라고 하셨음에랴.

하지만 500년이 지난 지금에는 역으로 가톨릭교회가 개신교회를 향하여 종교개혁을 요구할 계제에 이른 점들도 있다. 무엇보다도 사분오열의 파벌싸움, 다른 종교에 대한 과도한 배타성, 윤리의식의 저하, 교권 세습제, 교회 재산 사유화, 사회적 신뢰성 저하 등에서 그렇다. 따라서 종교개혁은 개신교회들이 현재진행형이 되도록 앞장서야 한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비판의 수위가 하야와 탄핵에 이르렀다. 여러 가지 부패가 밝혀지면서 정치적으로 큰 소용돌이가 일고 있다. 미국의 45대 대통령 선거는 트럼프 공화당 후보의 당선으로 끝났다. 그런데 양식 있는 투표자들의 마음은 누구를 찍었건 미국의 앞날에 대한 걱정에 휩싸여 있다.

당선자와 낙선자가 모두 뇌수와 심장이 개인적 탐욕으로 짙게 염색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여야정치권, 사회지도층과 언론도 모두 한 통속이다. 그리고 이런 치욕적 대혼란의 근본뿌리는 대통령이 지성과 윤리가 실종된 미신적 종교에 빠졌기 때문이다.

미국대통령 가운데 존경받는 이들은 대체로 워싱턴, 링컨, 루즈벨트, 케네디, 레이건 등이다. 그들은 모두 암살당했거나 죽음의 위기를 체험했다. 바른 지도자가 되려면 ‘죽어서 산다’는 결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역사심판주의 뜻이다. 그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정신이다.

그래서 또 절규한다. 십자가 결단으로 모든 영혼이 거듭나고 가정이 살아나고 교회가 새롭게 되고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문화, 군사가 제자리를 찾게 되어야 한다. 모든 사람이 자기 이익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한 희망은 아무 곳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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