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교과서’, 국가가 정해준 교과서다. 한국 역사 분야에 대하여 국가가 정해준 책만을 사용해서 수업을 진행해야 한다는 말이다.

국정교과서 논란과 연관하여 일반적인 당위와 구체적인 상황을 나누어보자. 먼저 당위성으로 보면 문제는 간단하다. 국정교과서는 선진국으로 가는 데 걸림돌이다. 선진국에서 국정교과서를 사용하는 나라는 없다. 일정한 방향으로 역사를 해석하고 그 해석을 국민들에게 주입하는 것은 독재 정치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공산당 식의 세뇌가 그런 종류 중 하나다.

지구촌이라 불리는 오늘날의 세계에서 다양성을 훈련하지 않으면 뒤쳐진다. 창의성이 장기적인 국가 발전에 핵심이다. 우리 교육의 문제점으로 흔히 지적되는 것이 주입식 교육이다. 중고등학교까지는 선진국보다 뛰어나지만 정작 대학 교육에서는 뒤처지는 이유도 창의성이 부족해서다.

역사에 대한 해석과 상상력은 인문학에서도 핵심이다. 올바르고 창의적인 역사 인식은 미래를 열어가는 열쇠이기도 하다. 지나온 과거 역사에 대하여 한 가지 시각만 배운 사람들이 무한한 가변성을 가진 미래를 주도해나가지 못할 것은 보지 않아도 뻔하다.

그러면 구체적인 우리 상황에서는 어떤가. 이 점과 연관하여 역사 과목의 국정교과서가 필요하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른바 ‘종북’에 기울어진 교육계의 문제를 바로잡는 방법으로 말이다. 그러나 역사 교과서 국정화 작업은 시작부터 그 의도를 의심받아 왔다. 박근혜 대통령의 부친인 박정희 대통령의 통치를 미화시키려는 목적을 갖고 진행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뉴라이트 계열의 역사관을 정당화시키려고 조직적으로 진행해 온 정황이 최근의 언론 보도를 통하여 드러나기도 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국정화 논란 속에서 드디어 지난 28일에 국정교과서 현장 검토본이 공개되었는데 의혹과 논란 부분이 현실로 확인되었다. 오죽하면 보수 성향의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까지도 ‘편향된 교과서’라며 수용 불가 입장을 밝혔을까.

국정화 논란은 좀 더 큰 틀에서 박정희 대통령과 연관하여 생각하면 판단이 명확해진다. 박정희 대통령의 공과나 찬반을 떠나서 1960년대 이후 박정희 대통령의 통치와 연관하여 우리 사회는 오늘날까지도 박정희와 관련된 갈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뉴라이트 집단의 활동과 이와 밀접하게 연관된 박근혜정부가 들어서면서 대통령의 주도로 박정희 시대를 미화하려는 의도가 노골화된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그런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박근혜정부는 실패한 상황으로 끝나게 되었다. 나라 전체를 뒤흔들 정도로 한국 사회에 드리운 ‘박정희 그늘’이 큰 것이다.

우리 사회는 어떤 방식으로든 박정희의 그늘을 넘어서야 미래를 열어갈 수 있다. 박정희 대통령을 흠모하여 그의 딸을 대통령으로 만든 것도 우리 사회고 그 딸의 통치를 거부하고 있는 것도 우리 사회의 뜻이다.

지난 26일 토요일 광화문에서 열린 190만 명의 평화 집회는 세계 역사에서 유례가 없을 것이다. 이 집회는 우리 사회가 박정희에 대한 향수와 비판 양자를 넘어서서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국정교과서 문제는 박정희 그늘과 연관된 여러 가지 문제 중 하나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분출하고 있는 엄청난 힘은 현상적으로는 박근혜정부에 대한 엄중한 문책이지만 더 크게 보면 지난 60년의 역사 흐름을 넘어서서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려는 정신적 요청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역사 과목 국정교과서 문제는 생각보다 간단히 풀린다. 더 나은 미래로 가자는 것이라면, 국정교과서 계획은 백지화해야 맞다.

기독교적 역사관으로 보더라도 국정화는 맞지 않다. 요한복음 8장 32절을 생각해 보라.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기독교의 복음은 다양성을 하나님의 뜻으로 선포한다. 획일화된 정신 구조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세계를 왜곡시킨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앞으로 움직인다. 과거는 회상의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주어라.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