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향기내는 나라

하나님이 태초에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창 1:26). 여기에서 ‘형상’을 어떤 이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와 비슷한 형태로 만드셨다는 뜻으로 이해합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부분적인 이해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에서 ‘형상’이라고 하는 말은 히브리어의 ‘쩨ㄹ렘’을 해석한 말입니다. 이 말은 단순히 겉모습이 같다고 하는 말의 의미를 넘어섭니다. 어떤 사물의 ‘형상’(히.쩨ㄹ렘)은 그 사물로 하여금 동일한 또 다른 것을 온전하게 생각나게 하는 것을 일컫습니다.

그래서 현대 히브리어에서는 쩨ㄹ렘 (히.찔렘)이란 말을 ‘사진 찍다’라는 말로 사용합니다. 어느 정도 이 말의 의미를 적절하게 설명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보고 싶을 때 그 사람을 볼 수 없을 때 사진을 보며 위안을 삼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그 분이 가지신 품성대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성경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대신 우리의 삶이 그들에게는 성경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며 “아하~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는 분이구나”라는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생각할 수 있게 해야 할 우리 모습이 망가지고야 말았습니다. 처음 창조하셨을 때의 모습과는 달리 망가지고 깨어져서 처음 창조할 때의 모습에서 많이 멀어졌습니다. 우리를 보면서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이 불가능해졌습니다. 사진이 찢어져서 그 사진이 더 이상 누구인지를 알아볼 수 없게 된 것처럼 말입니다. 

제가 중학교 때 전학을 온 아이가 있었습니다. 참 순수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그 아이에게 소위 일진들이라고 하는 친구들이 접근해 자기네 세력으로 끌어들였고, 얼마 안가서 그 아이는 정말 그들과 같아졌습니다. 말하는 태도나 행동이 모두 불량해졌습니다.

인간도 똑같습니다. 처음에 인간은 그 시골아이처럼 순수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품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마귀의 꾀에 빠져서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죄가 그 안에 들어왔습니다. 그 때부터 인간은 순수함을 잃어버리게 되었고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습니다.

그 때부터 사람들의 가치관이 달라졌습니다. 인간의 순수함은 타락하여 예수님의 향기를 내야 할 인간에게서 죄로 인해 썩는 냄새가 악취를 풍기기 시작했습니다.

구원이란 이 악취 냄새를 제거하고 인간에게서 다시 예수님의 향기를 내는 일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목적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추악하여 냄새나는 나의 모습속에서 예수님의 향기를 회복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닮아서 아름다운 말을 하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닮아서 무례하지 않고 서로 존중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저는 우리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믿었던 예수님과 천당을 믿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죽으면 영원히 죽지 않을 천당에 가는 것을 믿습니다. 조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죽어서 가는 나라 그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하나님이 처음 이 세상을 창조하셨을 때의 모습을 회복한다면 그곳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곳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가는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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