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 건국에 크게 공헌”
‘일제 강점기 이후 기독교의 역할’ 진단

일제 강점기 이후 기독교가 한국사회에서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진단하고 역할을 모색하는 세미나가 열렸다.

한국교회연합(대표회장 조일래 목사)과 서울신학대학교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소장 박명수 교수)는 지난 11월 19일 서울신대 백주년기념관에서 ‘해방공간에서의 한국사회와 기독교’를 주제로 학술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에는 서울신대와 연세대, 서울장신대, 안양대, 목원대 교수 10여 명이 ‘해방 이후 한국사회의 변화’와 ‘해방공간의 한국사회와 기독교의 관계’에 대해 발표했다.

이날 발표자들은 해방 후 대한민국의 건국 과정에서 기독교인의 참여와 영향력이 상당히 높았다고 평가했다. 특히 이은선 교수(안양대)는 ‘독립촉성국민회와 기독교’란 주제로 대한민국 건국당시 기독교인들의 활약상을 설명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일본이 미국에 항복한 후 국내에서 제일 먼저 조직된 것은 건국준비위원회(이하 건준)였다. 일본이 치안권과 행정권을 여운형 등 국내 지도자들에게 맡겼다. 이후 여운형은 안재홍과 협력해 건준을 조직했고 건준은 전국 단위를 조직하면서 세력을 넓혔다. 특히 평북과 평남, 전남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는 처음에는 기독교인들이 지도부를 맡은곳이 많았다.

이 교수는 “건준 활동 이후 이승만이 귀국해서 자신의 정치적인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독촉중협을 만들었고 상당수의 기독교인들이 참여했다”고 말했다. 그는 “임시정부를 이끌었던 김구 등 기독교인들이있었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의 활발한 참여는 당연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초기 독촉중협은 독촉국민회로 개편되었고 배은희, 이관운, 남천우 목사가 가담했다. 배은희 목사는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장로교 목사였고 이관운 목사와 남천우 목사는 감리교 목사였다. 독촉국민회의 조직 확대에 공헌을 했던 송필만, 임영신, 이기붕 등도 미국의 동지회에서부터 이승만을 지원하고 도왔던 기독교인들이었다. 

국회의원 가운데서도 기독교 신자 비율이 높았다. 제헌국회의 경우 북한에 배정된 100석을 제외하고 198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했는데 그중 25%에 해당하는 50명 정도가 기독교 신자였다. 그 가운데 4명은 목사(이윤영 오택관 이남규 오석주)였다. 이승만 정부의 초대 내각 21개 부·처의 장 가운데 기독교 신자가 9명이었고 그 중 2명은 목사였다. 또한 그의 집권기 정부의 19개 부 장차관 242명 가운데 38%, 그리고 국회의원 200명 중 약 25%가 기독교 신자였다.

이 교수는 “기독교인과 목사들은 당시 사회에서 지도자들의 위치에 있는 경우가 많았다”며 “독촉중협의 지도부에서 활동하면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초석을 다졌다”고 말했다.

이 밖에 이날 토론회에서는 박명수 교수(서울신대)가 ‘건국동맹과 좌익 민족통일전선’, 김명섭 교수(연세대)가 ‘관념충돌로서의 세계대전과 기독교’, 허명섭 교수(서울신대)가 ‘4·3 사건과 제주 기독교’, 현길언 전 교수(한양대)가 ‘해방기의 기독교 문화’ 등에 대해 발제했다.

박명수 교수는 “해방과 더불어 서구의 민주주의가 남한사회에 들어왔을 때 이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던 집단은 기독교였다”며 “이런 시점에서 기독교가 해방공간에서 끼쳤던 영향력을 돌아보는 시간은 매우 의미있는 시도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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