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이 수단이 되게 하라

가인과 아벨이 어느 날 하나님께 제물을 드렸습니다. 아마도 한해를 마무리 하기 위함이었거나 혹은 제사를 꼭 드리도록 예정된 때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벨의 제물은 받으신 반면 가인의 제물을 받지 않으셨습니다. 이로 인하여 가인은 아벨을 죽이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이를 두고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곡식으로 드리는 제물보다 짐승으로 드리는 제물을 더 귀하게 여기셨기 때문이라고도 합니다만, 이는 그리 설득력 있는 해석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성경은 이에 대해서 히브리서 11장 4절에서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벨의 믿음으로 드린 제사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해를 할 수 있을까요? 아마도 원문을 통해서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해 조금이나마 구체적인 답변을 얻을 수 있을 듯 합니다. 아벨의 제물을 설명하고 있는 대목에서 아벨은 하나님께 정성을 담아 드렸다는 뜻을 담아 기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4장 4절에서 아벨이 드린 제물에 대해서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다”(히. 베헤벨 헤비 감 후 미브크로트 쪼노, 4절) 라고 말씀합니다. 이 문장은 일반적으로 히브리 문장 기술법에서 흔히 사용되는 ‘이사일의’(二詞一意, hendiadys)라고 하는 기법입니다. 즉 두 개의 품사로 하나의 의미를 전달하는 방식인데, 이 문장을 제대로 번역하자면 “그는 자기 양 떼의 첫 새끼 가운데서 가장 살진 것을 드렸다”고 번역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즉 아벨이 드린 더 나은 제사라 함은 하나님께 제물을 정성스럽게 드린 행위에 있음을 의미합니다. 더욱이 아벨이 드린 제사법은 나중에 율법에서 요구하는 방식과도 부합합니다. 출애굽기 13장 2절에서도 하나님께 예물을 드릴 때에는 자기 소유 가축의 첫 새끼 가운데서 가장 살지거나 건강한 것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정성이 담긴 예물을 드린 것과는 달리 가인의 제물에 대해서는 다만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여호와께 드렸다’ (히. 바야베 가인 미프리 하아다마 민하 라도나이, 3절)고 간략하게 표현함으로써 아벨이 제물을 드릴 때의 표현과는 달리 그의 제사에는 그 어떤 정성도 담겨있지 않음을 보게 됩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히브리서 11장에서 아벨이 드린 믿음으로 드린 제사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최선을 다한 제사였던 반면 가인이 드린 제사는 다만 의무를 수행하는 것에 불과함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아벨의 제사를 받으신 이유는 가인의 제물과의 차이 때문이 아닌 제물을 드리는 사람의 마음상태에 달려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제물의 종류는 그 제물을 드린 사람의 태도만큼 중요하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당연히 너희는 세상 따라 살지 말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 따라 살지 않으려면 하나님 없는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식하며 세상을 바라보아야 가능한 일입니다. 세상 사람들이야 하나님을 모르니 자기들의 방식으로 사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목적과 삶의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외에는 절대로 우리의 삶의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세상 따라 살지 말라는 말은 양을 잡아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듯 우리가 지금까지 삶의 목적으로 삼았던 세상적인 성공들을 이제는 삶의 목적이 아닌 도구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이제부터 새로운 삶의 목적을 위한 좋은 도구로 사용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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