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499주년을 맞이한다. 1517년 10월 31일 면죄부를 비판하는 루터의 95개 논제로 유럽의 종교적 지축이 흔들렸고, 결국 프로테스탄트(Protestant)라는 개신교가 탄생했다.

면죄부는 가톨릭교회가 재원이 필요할 때마다 유통시켰던 주요 수입원으로 사실 십자군 시대부터 등장했었다. 중세 후기 르네상스교황시대에 교황청의 예술장식과 업적을 내세운 교회건축에 많은 자금이 필요하자 면죄부가 남용되었다.

면죄부는 하나님을 재판관과 심판자로 보는 신학적 전제 속에서 죄를 떠나 살 수 없는 인간의 연약한 심리와 구원을 갈망하는 종교심을 교묘하게 이용했다. 구매자는 죄로 인해 받는 형벌의 자유를 보장받았다. 교황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형벌의 사면을 확증해주었다.

가톨릭교회의 사제요, 교수였던 루터는 면죄부에 대해 격노했다. 면죄부의 모든 가설이 성경의 가르침과 배치되었기 때문이다. 루터는 성서학 교수로서 시편, 로마서, 갈라디아서를 강의하면서 그 시대의 교회가 성경이 아닌 인위적인 제도로 운영되는 것을 목도했다.

성경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며, 하나님의 의는 복음 안에 나타나 있다(롬1;16)고 증거한다. 그러나 교회는 그리스도의 공로와 성인의 공로를 구매하는 것(면죄부)이 구원을 가져온다고 가르쳤다. 루터는 교회의 과제를 면죄부 판매가 아니라 참된 회개의 선포에서 찾았다.

루터의 종교개혁 정신은 성경에 있다.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은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은혜’(sola gratia)와 더불어 종교개혁의 삼대 슬로건이다. 교회 역사에 등장했던 모든 개혁은 성경을 그 중심에 두자는 운동이었다. 교회가 성경에서 멀어져 제도화된 경직성을 드러내고, 성도의 성경소외는 영적인 무지와 메마른 삶을 초래했다.

교회 역사에 등장했던 수도원운동(파코미우스, 바실, 베네딕트)과 평신도운동(카타리, 발도, 프란시스코, 도미니크)은 성경을 가까이 하고 성경대로 살자는 시험대였다. 그러나 중세교회는 교권을 가지고 이단으로 몰거나 회유하여 많은 귀중한 목숨들이 희생되었다.

루터의 성경 강조는 성경에 복음이 있고, 교회의 참된 보화는 복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복음이 설교되는 곳, 그곳이 바로 루터에게 있어서 교회였다. 교회는 복음을 듣는 장소이다. 때문에 교회는 더욱 확산되어야 하고 굳건해져야 한다. 교회의 확산은 곧 복음의 확산이다.

복음과 교회, 교회와 복음은 두 개의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의 양면이다. 교회가 있는 곳에 복음이 있고, 복음이 온전히 증거 되는 그 곳에 교회가 있다. 오늘날 교회의 교회됨을 다른 이유에서 찾아서는 안된다. 교회의 본질은 건물이나 사람, 혹은 지역이나 시대성에 있지 않다. 루터는 복음과 성례전에서 교회의 표지를 보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통해 죄인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알리고, 그 사실을 입으로 시인하고 마음으로 믿는 영혼에게 세례를 베풀고 성례전을 시행하는 그 곳이 교회이다. 

루터의 종교개혁 정신은 시대마다 혹은 지역마다 달리 해석되고, 정치적으로 악용되기도 했다. 루터를 투사로 선전하거나 민족주의의 영웅으로 둔갑시킨 시대도 있었다. 루터를 분열자요, 이단이라고 여겼던 과거 가톨릭교회의 루터 이해도 20세기에 들어 변화했다. 가톨릭교회는 오늘날 그를 ‘진정한 가톨릭인’으로 여긴다.

루터는 교회의 본질과 성경에 민감했던 사제요, 교수였고, 복음에 분명한 태도를 취한 사람이었음을 오늘의 교회가 되새겨야 한다. 다시 종교개혁을 기억해야 할 때가 왔다. 오늘의 교회는 종교개혁이 남겨준 유산을 기억하고, 그 정신을 현재화해야 한다.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 이것이 프로테스탄트의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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