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1월 말, 당시 총회장님의 강력한 의지로 신학대학 교수들과 교단의 신학교육 관련 목회자들이 충남 도고에 모여 2박 3일 동안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신학교육 혁신을 위한 신학교육 심포지엄’을 가진 적이 있었다.

총회장님은 개회예배 설교를 통해서, 신학교육 정책위원장 목사님과 신학대학의 부총장님께서는 각각 발제를 통해서 ‘역량있는 목회자 양성을 위한 신학교의 사명’을 역설하셨다.

발표가 끝난 후에는 토론이 이루어졌는데, 전체적인 분위기는 신학교가 제대로 교육을 하지 못한다는 쪽이었다. 신학교 교수의 입장에서는 2박 3일 동안 목회자들로부터 매를 맞는 느낌이었다. 올 가을에도 이러한 모임을 할 거라고 하는데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지금 신학교와 신학교육은 여러 가지로 어려운 국면에 처해 있다.
첫째로 무엇보다도 신대원 입학생들의 자질이 점점 하락하고 있는데 이는 기독교 신자수의 감소와 비례하여 목사 지망생의 숫자가 감소하는 시대적인 현상과 맞물려 있다. 또한 인터넷의 발달은 젊은 학생들로 하여금 정보의 획득을 능숙하게 하고, 휴대폰의 발달은 카톡이나 문자를 통해 신속한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였지만 반대로 신학전공 서적을 읽고 이해하는 사고능력을 빼앗아 가버렸다.

둘째로 뼈아픈 자성을 하자면, 신학교와 교수들이 상아탑 안에 안주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필자를 포함한 신학교 교수들은 자기가 공부한 것을 가르치는데 익숙해 있기 때문에 세상의 한복판에서 영적투쟁을 하고 있는 교회의 현실에 대해 목회자들만큼 절실히 느끼지 못하고 있으며 따라서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대응을 잘 하지 못한다.

지금 교회가 신천지 문제 때문에 처절한 투쟁을 하고 있는데 신학교에 30명이 넘는 ‘신학박사’들이 있어도 거기에 대한 대처법이나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는 것이 그 단적인 예이다.

물론 낮은 교수확보율로 교수 1인당 학생수가 많고, 타 대학에 비해 강의 시수가 많으며, 대학평가를 위한 과도한 행정업무 등으로 인해 교수들의 부담이 큰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신학대학이 교회현장과 목회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명제는 여전히 유효하다.

셋째로, 신학교가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중대한 문제는 목회자들의 어긋난 기대감이다. 목회자들은 신학교와 신학생들에게는 많은 기대를 하지만 학문으로서의 신학과 신학교수들에는 관심이 없다. 오히려 목회는 목회자의 영역이지 신학교수들이 뭘 아느냐 하고 신학과 목회 사이에 경계를 그어 버린다. 이렇게 되면 자칫 반(反)지성주의에 빠질 염려가 있고, 테크닉과 방법론에 의지하는 목회를 하게 될 것이다.

필자는 신학교 교수가 된 이후 몇몇 크다고 하는 교회에서 협동목사로 섬겨 왔는데 담임목사님으로부터 “당신의 전공을 우리교회에서 활용해보라” “당신의 전공을 우리 교회에서 활용하여 나의 목회를 도와주시오” 하고 요청을 받은 적이 거의 없었다.

문제는 목회자들의 이러한 태도가 신학생들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이다. “이거 배워봤자 현장에서 쓸모도 없는데….” 하고 생각하는 신학생이 어떻게 신학공부를 열심히 할 수 있겠는가?

‘참 목회자’ ‘역량있는 목회자’를 만들어내는 신학교육의 중요성은 이것이 교단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신학교육이 신학교만의 노력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고 반드시 교단의 ‘도움’과 ‘개입’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교학(敎學)연계’는 필연적 과제이다. 땜질식 처방으로는 안된다.

교단 관계자들과 신학교 책임자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치열한 논의를 해야 한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계획을 세워야 한다. 어떤 상설위원회 같은 것을 만들어서 지속적인 연구를 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 될 것이다. 신학교육을 통한 교단의 부흥성장을 간절히 꿈꾸는 한 신학자의 호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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