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당건축운동과 성전봉헌식

인천교회가 창립된 지 11년이 지났다. 100여 명의 신자가 주일예배 때 80~96인씩 모였다. 인천 4만5000명의 영혼을 대상으로 한 교회로서 전임 강송수 목사가 3년 전부터 예배당 건축운동을 시작했다.

4만5000의 인천의 영혼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가진 교회로서 예배당 신축이 시급했다. 인천교회는 예배당건축운동을 서둘렀다. 건축예산액 3600원을 목표해 오랫동안 기도했던 성전건축을 실현할 작정으로 ‘기성회’를 조직하고 ‘헌금장려위원’을 선정했다.

성전신축을 위하여 전교인이 매일 조석으로 기도하도록 공포하고 가정을 방문하여 헌금을 청한 결과 약속한 헌금이 700원에 달했다. 이 금액으로 조선체로 지어볼 작정으로 우두수(Woods) 선교사에게 보고했더니, 그가 미국성결단체 몇몇 교인들을 통해 3000원이라는 거금을 지원해주었다.

건축업자 12명의 입찰을 받은 결과 건평 39평 일등벽돌로 벽의 높이 14척, 지붕 꼭대기 31척, 지하실 한 칸과 종각 2층을 합하여 3000원에 낙찰되어 5월 15일에 기공하여 7월 25일에 준공하게 되었다.

13년 전부터 내려오던 낡은 예배당은 없어지고 그 터 위에 일등벽돌로 지은 웅장한 예배당이 장엄하게 솟아있다. 조개껍질을 엎어 깔아놓은 것 같은 화평리 조선사람 촌락 한가운데 삼십여 척 되는 2층 종각은 공중에 우뚝 솟아 그 근방의 송현리 용강동 금곡리 내리 외리 산 근정 등지를 내려다보고 있다.

또한 멀리 싸리재 마루턱인 인천의 제일 번화한 거리에서는 정면으로 예배당을 바라보고 있으며, 평양서 주문해온 교회종소리는 멀리 십오 정 밖에 있는 율목리의 산정언저리 등지에 있는 신자들에게까지 들려줄 뿐만 아니라 온 인천시민의 귓전을 두드려 깨우고 있다. 생각할수록 모든 감사와 영광을 하나님께 아멘으로 돌릴 수밖에 없다.  

성전건축역사가 끝나자 안성지방회의 회기가 되어서 평택교회로 정했던 안성지방회의 장소를 인천교회 봉헌식을 기하여 대대적으로 안성지방회와 인천교회 봉헌식을 거행하게 되었다. 성전봉헌식은 9월 27일 오후 2시에 경성성서신학원장 이명직 목사와 헤인스 목사 부부가 참석했고, 5처 교회의 남녀교역자와 신자대표, 인천시내 내리감리교회신자들이 참석해서 200여 명의 청중이 넉넉하게 수용되었다.

예식은 헤인스 목사의 사회, 헤인스 부인의 독창과 손문준 씨의 독창, 감리교회의 지방감리사 목사와 광주교회 김정호 전도사의 축사, 주임교역자의 연혁설명, 이명직 목사의 이사야 56장 7절의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다”라는 설교로 봉헌식이 성대하게 진행되었다. 

인천교회는 1918년에 정빈 전도사와 최병애 전도부인이 인천 싸리재에다 초가 몇 칸을 세 얻어 최 에스더라는 자매 한 명으로 시작하여 13년 후인 봉헌식 날에 이르러 140명의 신자가 모이는 교회로 성장했다. 교회당 건축봉헌의 수입 총액이 3740원인데 그 내역은 본부로부터 3000원, 구옥 매매대금 127원, 신자로부터 603원 47전, 타교회의 신자로부터 10원이었다.

지출 총액이 3738원인데 그 내역은 예배당건축비 3015원, 주택구입비 285원, 종 값과 가설비 75원 판장 값과 가설비 150원, 설계비 35원, 돌 값과 인부대금 90원, 전등가설비 20원, 상량비용 15원, 봉헌식비 23원, 본부왕복차량비용 31원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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